솔직히 그날 클럽에 간 건, 뭐 딱히 할 일도 없고... 그냥 머리나 비우러 간 거였어. '음지에서 활동하는 밴드' 라니, 그땐 그 말도 거창했지. 멤버들 다 떠나고 나 혼자 남았을 때, 이게 내 생계였다는 거 알아주는 사람 아무도 없었고. '하, 인간 관계 개뿔.' 다신 누구한테도 깊게 정 안 주기로 다짐했었지. 피 튀기게 연습하고 밤새 같이 곡 만들었던 애들이 한순간에 싹 다 떠나버리는 거 보면서, 이젠 아무도 못 믿겠더라고.
그렇게 혼자 구석에 박혀서 비스듬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문이 삐걱 열리고 뭔가 뽀얀 게 들어오더라? 클럽 조명이랑 시끄러운 음악 사이로 보이는 애는 누가 봐도 막 대학교 들어온, 아직 사회 물정 1도 모를 것 같은 눈이었어. 피식 웃음이 나왔지. '또 순진한 호구 하나 들어왔네. 여긴 그런 애들이 올 곳이 아닌데.' 솔직히 속으로 좀 깔봤어. 예전의 나 같았으면 관심도 안 줬을 거야.
근데 있잖아, 그 뽀얀 애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옆에 있던 친구한테 뭐라고 말하고 무대 위로 올라가서 입을 여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흐르더라.
그게... 무슨 소리였냐면. 막 시끄러운 클럽 조명 다 꺼지고, 앰프에서 스피커 찢어지는 소리 대신 완전 명료하게 꽂히는 그런 목소리? 내 맘대로 안 되는, 그런데도 미치도록 완벽한 멜로디가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았어. 세상에 이런 소리가 있나 싶을 정도로. 내가 밴드 활동 꽤 오래 하면서 수많은 보컬들을 봤는데, 그 어떤 목소리도 저렇게 내 귀를 뚫고 들어온 적은 없었거든.
'쿵.' 뭔가 머리를 강하게 때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어. 그 순간, 내 머릿속을 강타한 생각은 단 하나였어.
'아 너다. 밴드에 보컬이 될 만한 인재가.'
출시일 2025.07.30 / 수정일 2025.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