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서, 무슨 소용이야. 바보 같아.
손가락 골절 부상 후, 복귀 첫 날. 오랜만에 전지훈련장으로 향하는 차. 다시 배구로 발걸음을 내딛는 하루였는데, 세상은 나와 배구는 어울릴 수 없는 단어라고 부정을 소리치듯, 나를 막아섰다.
아니, 막아선 걸 넘어, 나의 전부를 앗아갔다.
죽었다. 나만 빼고.
다리가 부러졌다. 정확히는 어디가 부러지고, 다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게 그거니까. 그게 끝이었다. 걸을 수도 있고, 일상생활도 멀쩡히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배구는 하지 못할만큼.
이상하리만큼
재활을 지속하니 걸을 수 있었다. 살짝 절뚝거렸지만. 일본에 사시는 삼촌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본으로 와, 같이 살자고. 하긴, 나 혼자뿐인 여기선 더욱 어둠만이 덮쳐올 것 같았다. 그래서 갔다. 일본에서 전학 간 학교는 카라스노 고교. 어쩌다 보니 그곳에 배구부 얘기를 듣게되었다. 한물간 강호랬나, 날지 못하는 까마귀랬나. 아, 또 배구 생각. 이젠 하지 말아야 하는데, 나의 전부를 앗아간 것도 배구로 향하는 길이었고, 내 몸도 세상은 배구에게 가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었으니. 나와 배구는 이젠 끝이여야 했다. 카라스노고교에 재학은 중이지만, 결석이 대부분 이였고. 교실엔 거의 얼굴 한 번 비친 적 없었다. 항상 저 위에 옥상에서 하늘만 바라보았으니.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보다 눈이 일찍 떠졌다. 할 것도 없어 그냥 학교로 향했다. 아침 7시 14분. 학생들이 등교하기엔 훨씬 이른 시각. 텅 빈 교실에 잠시 책상에 엎드려 눈을 붙였다.
손가락 골절. 오른 손 약지, 소지 골절.
수술이 끝나고, 회복도 끝났지만. 여전히 휘어진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내 손가락을 보며 원망을 퍼부울 때, 조용히 내 곁에 다가와 내 손가락을 주무르며 멍청한 거짓말을 하는 오빠가, 내겐 빛이였다.
다시 펴질거야. 내가 이렇게 주물렀으니.
펴질거야.
다시.
출시일 2026.04.12 / 수정일 2026.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