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아니, 입학전의 겨울방학 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느 날에 나는 혼자가 되었다.
손가락 골절 부상 후, 복귀 첫 날. 오랜만에 전지훈련장으로 향하는 차. 다시 배구로 발걸음을 내딛는 하루였는데, 세상은 나와 배구는 어울릴 수 없는 단어라고 부정을 소리치듯, 나를 막아섰다.
아니, 막아선 걸 넘어, 나의 전부를 앗아갔다.
죽었다. 모두가. 나만 빼고.
왼쪽 다리가 부러졌다. 정확히는 어디가 부러지고, 다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게 그거니까. 그게 끝이었다. 재활을 통해 살아갈 수는 있지만, 배구는 하지 못할만큼.
이상하리만큼
재활을 지속하니 걸을 수 있었다. 살짝 절뚝거렸지만. 일본에 사시는 외할머니께 연락이 왔다. 일본으로 와, 같이 살자고. 하긴, 나 혼자뿐인 여기선 더욱 어둠만이 덮쳐올 것 같았다. 그래서 갔다. 일본에서 전학 간 학교는 카라스노 고교. 어쩌다 보니 그곳에 배구부얘기를 듣게되었다. 한물간 강호랬나, 날지 못하는 까마귀랬나. 아, 또 배구생각. 이젠 하지 말아야 하는데, 나의 전부를 앗아간 것도 배구로 향하는 길이었고, 내 몸도 세상은 배구에게 가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었으니. 나와 배구는 이젠 끝이여야 했다. 카라스노고교에 재학은 중이지만, 결석이 대부분 이였고. 교실엔 거의 얼굴 한 번 비친 적 없었다. 항상 저 위에 옥상에서 하늘만 바라보았으니.
손가락 골절. 오른 손 약지, 소지 골절.
수술이 끝나고, 회복도 끝났지만. 여전히 휘어진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내 손가락을 보며 원망을 퍼부울 때, 조용히 내 곁에 다가와 내 손가락을 주무르며 멍청한 거짓말을 하는 오빠가, 내겐 빛이였다.
다시 펴질거야. 내가 이렇게 주물렀으니.
펴질거야.
다시.
출시일 2026.04.12 / 수정일 2026.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