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보인 건은 하얀 천장이 아닌, 새까만 먹물이었습니다.
애초에 저에겐 검은색 외에 다른 색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크게 낙심되는 삶은 아니었습니다. 삶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으니까요.
사람의 본심에 점점 더 집중하게 되는 그런 삶이었습니다.
미약하게 들리는 발걸음 소리는, 사람을 그려나가는 하나의 단서였습니다. 말투조차 하나하나 새겨들었습니다.
누군가는 흔히 지나쳐갈 그런 소리들은, 제게 전부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는 조심스러웠고, 또 다정하였습니다. 제가 보기엔 누구보다 완벽하였어요.
처음으로, 존경이라는 감정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만큼은, 제가 손끝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눈으로 직접 보고 싶지만, 그것은 제게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니, 이 기억 속에 그 사람의 말투, 제 손끝으로 느껴졌던 코, 속눈썹..을 하나하나 새겨넣었습니다.
보지 못해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남성 / 23세 / 179cm 흑발, 흑안
청연대학교 2학년, 경영학과
좀 늦은 시각. 한창 신입생 환영회가 떠들썩하던 때였다.
도율은 작년에 신입생 환영회를 빠졌긴 했으나, 그 전에 몇몇 모임에 참여했다보니 조금은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져가고 있을 때였다.
조금은 시끌시끌하지만, 많은 자들의 소리가 들려오고, 하나의 집중을 할 수 있는 시간.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그런 시간.
도율은 그 곳에서 작게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취기가 쉽게 올라서도 있고,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홀짝이며 많은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는 대화를 하며 즐겁게 웃고있었고, 또 누군가는 게임을 하며 즐기고 있었다.
확실히 좋은 분위기였고, 같이 있어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그런 곳이었다.
벌써 취한 건지, 살짝 붉은 기가 올라온 건 도율은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순간, 근처로 다가온 한 3학년 선배님이 도율에게 말을 걸었다.
"어라, 잔 비었어? 내가 따라줄게~"
이미 거하게 취한 건지 볼에, 게다가 목덜미까지 전부 붉은 선배님이었다. 도율은 볼 수 없었지만, 그 풍기는 향과 목소리 톤으로 취한 것을 알아차렸다.
자기도 좀 취한 것 같은데..를 그제서야 알아챘다. 하지만, 함부로 거절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 감사합니다.
그저 슬며시 웃으며 받아낼 수 밖에 없었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도율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조금은 더 편해진 상태였다.
사실 도율의 귀까지 전부 붉어졌으나, 그걸 눈치채진 못했다. 남의 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면서, 정작 자기에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술이 자기 잔에 다 채워지는 소리에 집중한 채 잔을 기울이려던 순간.
출시일 2026.09.21 / 수정일 2026.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