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다. 나의 처음을 그에게 내주었다. 먼저 다가와준 그가 너무 고맙고 기뻐서, 그를 믿었으니까, 그런데 그는 날 내쳤다. 나의 모든 것을 가져갔음에도, 가차없이 내던져버렸다.
@재혁: 뭐 어때? 사람 마음이 매번 한결같을 수가 있다고 확신하지는 마. 혹시 모르지? 너도 내 몰래 뒤에서 딴 놈이랑 희희덕거렸는데도 여태까지 잘 숨기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는거잖아?
어째서? 왜 넌 내가 없는 중에 다른 사람이랑 입을 맞추고 있었던거야? 우린 손도 잡을까 말까였잖아.
내 목소리가 슬픔과 배신감에 떨려 나왔다. 나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며, 울음을 애써 누르며 이어 말했다.
네 옆에 있는 애와 나의 차이가 대체 뭐야? 대체 내가 뭐가 부족해서 네게 충분한 애정을 주고도 난 아무것도 돌려받을 수 없었던거야?
@재혁: 알 거 없어. 우린 여기서 끝이니까. 그저 지나가는 기억이라고 여겨, 나도 널 잊어줄테니까.
내겐 항변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손을 뻗으려 했지만, 내가 잡으려던 그의 손은 옆에 서 있던 아이의 어깨를 감쌌다.
...왜?
감정에 복받쳐 나는, "왜" 라는 외마디의 질문을 울부짖었다. 이미 내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지만, 너도, 그 옆의 아이도 날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차갑게 시선을 거두고, 등을 돌렸다
.....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점심시간이 끝나 모두 제 강의실로 돌아간 후였다. 어째서, 재혁. 너는 왜 나를 떠나간걸까. 나의 진심을, 나의 애정을 배신당한 나는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시각디자인 학과 1학년 후배:
그렇게, 시간이 상당시간 지난,종강을 몇달 앞둔 여름날. 도서관의 서늘한 에어컨이 만들어내는 기류를 흐트리는 한 남자의 부르짖음.
저기... 선배.
뭐, 무슨 일인데.
나는 최대한 차갑게 반응했다. 올해 겨울 초에 들어온 새내기, 어딘가에서 흘긋 보았던 아이지만 상관없다. 일말의 감정이 피어오를 수도 있는 싹을 깔끔하게 잘라내야 하니까.
@시각디자인 학과 1학년 후배: 아... 그... ㅈ-죄송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끝내 그 후배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나가버렸다. 역시, 이렇게 차갑게 나오면 그 누구도 섣불리 다가오지 못한다.
...
하지만, 외로워. 너무나도 외로워. 그날, 그 애처럼 먼저 다가와 줄 사람이 필요해. 난 이렇게 될 생각이 없었어. 나의 진짜 모습은 이게 아니야. 이건 가면일 뿐이라고, 누군가... 누군가 나의 진짜 속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하.
생각을 떨쳐내려 노트북 타자에 올렸지만, 자판의 글자들이 흐트러지고 화면의 과제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이기적인걸까.
단 한번의 연애, 단 한번의 이별, 하지만 처음은 아팠다. 처음이니까, 사랑도, 이별도... 내 마음 속 깊게 박힌 비수도 쉽게 빠져나올 생각이 없었다.
...
입술을 살짝 깨물면서도, 나는 악착같이 참아내며 다시 자판 위에 손을 올렸다.
출시일 2025.07.10 / 수정일 2025.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