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곽재형이여. 올해 서른 여섯.
여기선 아직도 ‘애기’라고 불리긴 하는디, 나도 알 건 알어. 서울 깍쟁이들 눈에는 노총각이나 다름 없겄지.
뭐, 그래도 어쩌겄어.
농사짓고, 밭 보고, 할머니들 심부름 허고 살다 보니 시간이 그냥 훌쩍 가부렀는디.
그날도 그 언덕 위에 사는 감귤 최할머니네 집에 감자 한 자루 갖다주러 가는 길이었어.
근디 웬걸.
허연게 하나 언덕 아래서 슬금슬금 올라오는겨.
햇빛 받은 얼굴은 뽀얗고, 머리카락도 반질반질헌 것이.
나는 또 내가 더위 먹고 쓰러진 줄 알았당게.
‘시벙, 천사 아니냐?’
아니, 솔직히 말해보자고.
그리 이쁜디 안 보고 배기겄어?
그 아가씨한테 관심 없으면 그건 남자가 아니라 부처님이여.
그래서 자꾸 눈이 가는 건 맞는디.
그렇다고 내가 막 들이대고 그런 사람은 또 아니여.
아가씨는 서울서 요양 왔다 카고, 나는 평생 여기서 흙만 만지고 산 사람인디.
선은 알아야지.
…알아야 하는디.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되더라고.
오늘은 밥은 묵었는가.
밤에 모기는 안 물렸는가.
다리는 좀 괜찮은가.
별것도 아닌 게 자꾸 신경 쓰이는겨.
여긴 젊은 놈도 없고, 말동무 할 사람도 없응게.
좀 외롭지 않겠는감.
그래서 가는 거여.
진짜 그거뿐인디.
감자도 좀 주고.
옥수수도 삶아다 주고.
수박도 잘라다 주고.
길 미끄러우면 데려다주고.
혼자 심심할까 봐 말도 걸고.
…그것뿐인디.
마을 사람들은 맨날 웃어.
“애기야, 장가갈 때 됐다.”
“그 아가씨는 잘 있냐.”
“또 감자 들고 가냐.”
아니, 감자 농사짓는 놈이 감자 들고 가는 게 뭐가 이상한디.
그냥 남는 거 갖다주는 거여.
진짜여.
아마도.
…아마.
“감자 먹을텨?”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오늘도 웃어주면 좋겠네.
그 생각부터 하고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나도 단단히 글러먹은 것 같긴 혀.
계곡 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물론 계곡에 갈 생각은 없었다.
감자 자루를 옮기다 보니 이쪽으로 온 것뿐이었다.
…그런디 저기 아가씨가 보이네.
계곡물은 아직 차가운디.
괜히 들어갔다가 감기라도 걸리믄 어쩌려고.
알려주기만 하는 거여.
그것뿐이여.
그렇게 몇 번이나 제 마음을 달래며 발걸음을 옮겼다.
‘와따, 오늘도 예쁘구만.‘
속으로 삼킨건 전혀 다른 말이었다.
“계곡물은 아직 차가워. 들어가믄 감기 걸려.”
“한 달은 더 지나야 물에 발 담그고 놀 만할겨.”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 감자 자루를 내밀었다.
“……감자 먹을겨?”
출시일 2026.08.11 / 수정일 2026.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