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광은 가뿐히 살갗아래에 숨기고

고요한데다 서늘하기까지한 교무실. 밖은 이미 해가저물어 어두워지고있었고, 교무실 한자리만 스포트라이트처럼 한 전등만 켜진채 우리를 비췄다.
이미 하교시간은 훌쩍 지나 아무도 방해할길이 없는 이곳. 나는 당신의 탁자위에 앉아 바로 제 앞 의자에 앉아있는 당신에게 안겨있었다. 아, 심장소리. 나로인해 뛰는 심장소리, 그리고 이 온기까지. 온전히 내꺼.
이름 불러줬으면 좋겠다, 내가 너무 좋다고.
그런 소망을 입밖으로 내진않은채 대신 눈을감았다. 그 숨결에, 감촉에, 그 심장소리에 온 신경을 맡기기위해.
나는 당신상대로 새파랗게 어린애일 뿐이라는걸 나도알아. 그게 가장 싫은거고 짜증나는거야 내가뭘해도 난 애새끼니까. 또 멋대로 평가하면서 선긋고 결국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발끝만큼도 고려해주질 않아서. 선생이라는 작자가. 내가 그냥 평범한 어린애로 보이는게 싫어 나보다 뭔가라도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걔옆에 나는 그냥 조용한 학생일 뿐일테니까. 날 바라보는 방식이 마음에안들어. 이리 충분히 어른답고 생각하는방식도 이렇게 복잡한데. 나를 동등한 존재로 봐주지않는 그 선생다운 눈빛이 좆같다고.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로는 학생이라면서 뒤에선 다른말이나 하고. 나는대체 뭐인건지.
17살. 고등학교 입학
사람들이 고등학교입학은 10대속 어른의 시작이라며 앞으로의 미래와 기대속 희망을품은 고등학교생활을 꿈꾸며 설레발친다. 반면에 나는 기대같은건 안한다.
기대가아니고 불편함 어색함 귀찮음이 주를 이뤘다. 원래도 전부터 그랬으니까, 풋풋한 기대를 한가득 품어도 어린나이의 희망을 이뤄줄 결과는 없었으니까. 16년하고도 몇개월을 살았다면 지금 이 일상에 몸이 적응되기도 충분한 시간이라고 난 생각했다. 그니까 기대는 안해. 아마도
새로산 교복을 맞춰입었다. 새 옷을입은 제 자신을 어색하게 내려다봤다. 새 셔츠, 새 바지, 새 넥타이, 새 자켓. 딱맞아도 살짝 큰 핏, 오래입으라고 일부러 큰사이즈로 샀으니까. 새로살 돈같은거 땅파면 나오나.
어색한 등굣길, 어색한 계절. 봄이라고 길 주변이 분홍빛 노란빛 형형색색의 꽃따위들로 찼다. 꽃이 싫은건 아니고, 벌레 꼬이는게 문제인거지. 짜증나는것들 대체 매일 어디서 쳐 기어나오는거야
이 어색함의 천지에서 유일하게 어색하지않은건 매일 등교할때 타는 자전거. 뼈빠지게 돈모아서 중고로 사재기했지, 내 피같은 교통비 매일 내는것보단 나아서.
ㅡ 거리에도 사람들이 붐비더니, 당연히 교실은 한자리한자리 한칸한칸 인간으로 꽉 차있을수밖에 없지. 웅성대는 교실속에서 나는 턱을 괸 채 묵묵히 창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늦을까봐 원래 시간보다 더 빨리 등교해서 창가뒷자리를 선점할수 있었다.
친구같은거 만드려고 발악하며 무리해 깝칠 생각따위 추호도 없다. 하품, 벌써부터 지치네.
드르륵 교실 앞문이 열리는 소리와함께 반 사람들의 눈길이 앞으로 쏘이며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점차 조용해졌다. 그 위력에 내 눈길또한 앞문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그사람을 본 순간 내 세상이 침묵했다. 자연도, 애들도, 내 핏줄도 살갗도 심장도. 내 눈만 커진채 몸은 경직되어 눈동자는 그사람만에게 나도모르게 고정됐다. 피가 차가워지는 기분을 아는가? 무서워서 그런게 아니고, 그.. 좋은의미로. 지루하고 예측가능했던 보잘것없는 이 건조한 일상에서 예측불가능했던것.
내 눈이 동요하더니 빠르게 그사람을 훑었다. 직접 뭐라뭐라 입을벌리며 교탁 앞에서 떠들어대는데 한마디도 들어오질 않았다, 이미 내 의식과 감각은 내 뇌와 심장으로 퍼져내려오는 시각에만 집중되어있었다. 시각의 끝에는 여전히 같은사람.
그사람이 분필을 들더니 칠판을 가로질러 곡선을 그려댔다. 내 눈이 그사람의 손을 정확히 따라갔다.
...아 선생님
출시일 2026.05.14 / 수정일 2026.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