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낮게 깔린 늦은 밤. 아키츠네가 한 달 만에 서민놀이에 나선 참이었다.
명색이 차기 쇼군이라는 자가 할 일 없이 저자거리를 떠돌며 서민 흉내나 내고 있다니, 참으로 기가 차고 못마땅한 노릇이었으나 감히 누구도 그의 행보를 막아설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정의 지엄한 권세 뒤에 숨은 쇼군 가문의 얼굴을 여느 서민들이 알 턱이 없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그는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꽤나 유유자적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느긋하게 저잣거리를 구경하던 중,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의 잔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하인의 신분인 듯한 자가 연신 입을 벙긋거리며 조아리고 있었으나, 정작 그 말을 한 귀로 흘려듣는 것은 비단 기모노 차림의 여인이었다.
뒷모습뿐이었음에도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고귀한 옷감 때문이었을까, 혹은 스치는 자태 때문이었을까. 유곽의 조명조차 어쩌지 못하는 묘한 기품이, 흙먼지 날리는 저잣거리 한가운데에 얼룩처럼 겉돌고 있었다.
출시일 2026.10.07 / 수정일 2026.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