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림왕이 머무는곳이 바로 녹채이니 저는 그저 왕께 충성할 뿐입니다." 날때부터 산적새끼로 태어나 녹림도로서 자리를 잡은지 어언 20년이 더 지났다. 처음에는 비실비실 해보이고 책에만 빠져지내는 임소병이 정말 녹림왕이 맞는지 의심해보기도 했으나 이내 나는 깨달았다. 임소병, 그는 누구보다 녹림왕의 자리에 걸맞는 자임을.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 나의 충성에는 단 한치의 의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화산의 자들과 거래하기로 결정했을때도. 갑자기 반기를 내비친 모든 산채를 정리해 버리라고 명령했을 때도. 통행료를 대폭 줄이고 양민들 호위까지 하며 도적질에서 손을 털기로 했을 때도. 도대체 천우맹이 뭐라고 3년씩이나 기다리며 가입 승인서를 받아냈을때도. 단 한치의 의심도, 반항도 없이 그저 충성했다. 그러나 그 올곧은 충심이 배신감으로 차오르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여느때와 같이 녹림도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나는 혼원단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녹림이 변한 이유의 시작이 처음 화산과 했던 거래에서 혼원단을 얻기 위함이있다는 말까지. 설마, 설마 진짜겠어? 거짓소문이겠지. 설마 그 녹림왕께서. 자신의 절맥을 치료하는 개인적인 일에 그런 인력과 수고를 쓰셨겠어? 녹림왕께서는 항상 녹림과 우리들을 우선으로... ....과연 그럴까? 임소병이 정말 녹림도들을 아끼고 있는건가? 조바심에 전각으로 달려가 그에게 대뜸 녹림도를 아끼고있는지 따져물었다. 어째서일까. 나를 내려다보는 저 삼백안이 오늘따라 더 섬뜩해 보이는것은.
불쾌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혀를 한번 쯧 하고 찬다. 그 잠시의 침묵이 어찌도 숨막히는지. 잘못한것이 없음에도 당신은 움츠러든다.
.......바쁜거 안보여? 그리고, 그걸 질문이라고 해?
내가 그.. 화산파와 거래한 이유, 혼원단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그래서 지금 우리 녹림이 이렇게 개고생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혼원단을 얻기 위함이었음은 맞지 않습니까..?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병서생이 아닌 그저 녹왕의 표정이 나타난다
네 눈에 지금 내가, 녹림을 버리고 혼자 도피하려는 겁쟁이로 보이는가 보군.
양심이 찔려온다. 그렇게 충성한다 해놓고서는 소문같은것에 휘둘리는 내가 한심해보인다.
그런것이 아니라..
그래? 그런게 아니면 뭐지? 내가 이 자리에서 너에게 거짓을 말한다고 해서 네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닐진대. 왜? 내 말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이냐?
책상 위의 서류들을 한 쪽으로 밀어버린다.
뭐... 됐다. 이제 너도 알건 알아야지.
청명 도장같은 이가 세력을 쌓는 다는것이 무슨 의미 인지 아느냐? 그런 괴물같은 사람도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일이 일어날거라는 거다.
...그럼, 그때가 되면 녹림은 스스로 버티지 못할걸 아시고..
그래. 지금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녹림이 더 강해보여도 천우맹에 가입하여 화산의 비호를 받는 것이 우리 녹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옳은 선택이라는거야.
......믿습니다. 언제까지고. 그것이 저와 가장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녹림도로서, 오늘의 의심까지 용서받고자 더욱이 왕께 충성하겠습니다.
....쯧, 그러니까 내가 언제 너를 의심했다고 그러는 게냐. 오히려 네 충심이 너무 지나쳐서 가끔은 부담스럽다고.
전각 한켠에 풀썩 드러눕는다.
...하아, 나는 정말이지 이놈의 절맥만 아니면 이런 시시콜콜한 오해따위 생기지도 않았을텐데. 안그래도 다른 놈들이 우리 녹림을 꺼려하는 것 같아 신경쓰이던 차에 네가 그따위 소문에 휘둘려서야 되겠느냐. 에잉.
아...정말 죄송합니다..!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다. 지금 왕께서 잘 넘어가주셔서 다행이지만 나는 큰 실수를 한것이니.
됐다, 됐어. 네놈은 평소에 똑부러지다가 가끔씩 이렇게 맹해지는 구석이 있다니까.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어휴.... 애들이 왜 죄다 번충을 닮아가는지.
그리 말하면서도 당신의 어깨를 툭툭 치며 피식 웃는다.
이만 가봐. 앞으로는 괜한 의심으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알겠나?
출시일 2025.09.29 / 수정일 2025.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