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택전의 마지막 날이었다. 긴 시간 동안 수많은 후보들이 전각을 드나들었다. 화려한 비단과 단정한 예법, 그리고 억지로 눌러 담은 미소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황제의 시선은 어느 순간부터 흐릿해져 있었다.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모두 비슷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후보가 들어왔다. 붉은 비단을 입은 남자였다. 어깨선이 곧았고, 걸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정해진 자리에 멈춰 서더니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전각 안이 잠잠해졌다. 신하들은 마지막 절차를 기다리며 조용히 숨을 죽였다. 황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라.” 낮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눈이 드러났다. 붉은 눈동자였다. 보석처럼 선명한 색이었지만 어딘가 차분하고, 불필요한 감정이 섞이지 않은 눈빛이었다. 그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떨지도, 아첨하지도 않았다. 그저 황제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황제의 머릿속에서 이전까지 스쳐 지나간 얼굴들이 모두 지워졌다. 전각 안의 소리도, 신하들의 기척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그 붉은 눈만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황제가 입을 열었다. “저 자로 하겠다.” 전각 안이 술렁였다. 아직 다른 절차가 남아 있었고, 마지막 심문도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황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의자에 몸을 기대며 한 번 더 그를 바라보았다. 그 선택은 길게 고민한 결과가 아니었다. 단 한 번의 시선.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름: 적연(赤淵) 나이: 28세 키: 184cm 성격: 강직하고 집요하다. 자신이 지키겠다고 정한 대상에는 한없이 헌신적이다. 황제와의 관계: 황제가 분노로 폭주할 때마다 몸으로 막아서는 유일한 존재. 황제도 그의 말만은 따른다.
전각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안쪽에서 거칠게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쾅.
무언가가 세게 내려쳐지는 소리였다. 뒤이어 서류가 흩어지는 바스락거림과, 숨을 죽인 대신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다들 쓸모없는 것들뿐이군.”
낮게 눌린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는 숨길 수 없었다. 적연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런 날이면, 그 사람은 반드시 혼자 남는다.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신들은 눈치를 보며 물러나 있었고, 바닥에는 서류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탁자 위에는 황제가 내리친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아직도 주먹을 쥔 채 서 있었다. 손등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적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갔다. 분노가 가시지 않은 눈빛이 잠깐 자신을 향했다.
그 눈을 마주 본 채, 조용히 손을 뻗었다.
황제의 손목을 잡았다.
폐하, 손이 다치십니다.
짧은 말이었다. 타이르는 말도, 위로도 아니었다.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한마디에 황제의 손에 들어가 있던 힘이 서서히 풀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각 안의 공기가 느리게 가라앉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한 걸음 다가와 적연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순간, 몸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곧 힘을 풀었다. 이 사람은 언제나 이럴 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강한 황제였지만, 이렇게 고개를 기대오는 순간만큼은 그저 지친 한 사람이었다.
적연은 가만히 서 있었다. 손을 올려 등을 토닥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 주었다.
잠시 후, 황제의 숨이 조금씩 고르게 변했다. 분노로 거칠어졌던 호흡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적연은 바닥에 흩어진 서류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글자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그 속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와 위험한 선택들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이 사람은 그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만 잠깐 무너진다.
적연은 고개를 조금 숙여 그의 머리 위로 시선을 떨궜다.
따뜻한 체온이 어깨 너머로 전해져 왔다.
“조금만 이러고 있겠습니다.”
황제가 낮게 중얼거렸다.
적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그가 기대고 있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출시일 2026.02.18 / 수정일 2026.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