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동네에 살던 두 아이는 유치원에서 처음 제대로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같은 반 친구였지만, 하원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함께 집으로 향했고 어느새 하루도 빠짐없이 붙어 다니는 사이가 되었다.
같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간식을 나눠 먹고, 낮잠 시간에도 몰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작은 일로 싸우기도 했지만 금방 화해했고, 다음 날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함께 놀았다.
유치원 선생님이 둘 중 한 명을 찾으면 다른 한 명도 함께 나타날 정도로 늘 붙어 다녔다.
그렇게 두 사람의 20년이 시작되었다.

둘은 시간이 흘러서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가 끝나면 같이 집에 가고, 숙제가 끝나면 놀이터에서 만나고, 주말이면 서로의 집을 오가며 하루를 보냈다. 특별한 약속을 잡지 않아도 언제나 함께 있는 것이 당연했다.
어린 시절의 둘에게 소꿉친구라는 관계는 그저 가장 편한 친구라는 의미였다.
서로의 집 비밀번호까지 알 정도로 가까웠고, 부모님끼리도 서로의 아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알고 있을 만큼 자연스러운 관계였다.
같이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지고, 장난을 치다가 싸우고, 몇 시간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붙어 놀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집으로 돌아갔고, 한쪽이 감기에 걸리면 다른 한쪽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잔뜩 떠들어주며 옆을 지켰다.
어린 시절의 사진에는 늘 두 사람이 함께 있었다.
운동회에서도 같이 찍혀 있었고, 소풍에서도 나란히 앉아 있었으며, 생일날 찍은 사진에도 언제나 서로의 모습이 한쪽 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평범하게 함께하는 하루가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두 사람의 생활은 조금씩 달라졌다.
친구가 늘어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초등학생 때처럼 매일 붙어 다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서로의 거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연락했고, 시험 기간에는 서로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확인했으며, 힘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찾는 상대도 여전히 서로였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둘 사이에는 예전과 다른 어색함도 조금씩 생겼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행동이 어느 순간부터 괜히 신경 쓰이기도 했다.
같이 걷다가 손이 스치면 잠깐 어색해지고, 친구들이 둘을 놀리면 괜히 부정하면서도 완전히 싫지는 않았다.
특히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서로의 인간관계에도 조금씩 질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것을 연애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직은 그저 오래된 친구였고, 서로에게 가장 익숙한 사람이었으니까.
중학교 시절의 둘은 함께 웃는 날만큼이나 사소한 일로 싸우는 날도 많았다.
누가 먼저 사과할지 자존심 싸움을 하다가 결국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같이 편의점에 가기도 했다.
한 번은 크게 싸워 며칠 동안 말을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며칠 뒤 먼저 말을 건 것은 언제나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한마디였다.
"야."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 둘의 시간은 더욱 바빠졌다.
수업은 길어졌고, 학원과 공부 때문에 서로를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예전처럼 매일 함께 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둘의 관계는 오히려 더 깊어졌다.
힘든 날이면 가장 먼저 서로에게 연락했다.
시험을 망친 날에는 괜히 만나서 편의점 음식이나 먹으며 불평했고, 좋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자랑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잠깐 휴대폰을 확인했을 때 서로에게서 온 메시지가 있으면 이상하게 힘이 났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는 둘 사이에 확실히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다.
주변에서 둘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친구들은 둘을 볼 때마다 연애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말했다.
"너희 둘 진짜 안 사귀어?"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둘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웃으면서 부정하고, 대충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흔들렸다.
특히 다른 사람이 관심을 보일 때면 그 감정은 더욱 선명해졌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던 일들이 어느 순간부터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누구와 연락하는지, 누구와 같이 밥을 먹었는지, 왜 요즘 자신보다 다른 친구와 더 자주 만나는지.
그제야 아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단순히 오래된 친구라서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고백하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처럼 행동했다.
같이 웃고, 장난치고, 싸우고, 다시 화해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시간이 흘러 수능이 끝난 날.
오랫동안 이어진 입시 생활이 끝났다는 사실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앞으로의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학교라는 같은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 가면 각자의 생활이 시작된다.
처음으로 '언젠가는 떨어질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 이어져 온 관계였기에 둘은 서로가 언제까지나 가까이에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각자 다른 대학에 갈 수도 있고,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었다.
수능이 끝난 뒤 둘은 평소보다 더 자주 만났다.
시험이 끝났다는 핑계로 같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밤늦게까지 거리를 돌아다녔다.
초등학생 때부터 함께했던 장소를 다시 찾아가기도 했다.
어릴 때 자주 놀던 놀이터.
중학생 때 매일 지나가던 골목.
고등학생 때 시험이 끝나면 찾아가던 작은 식당.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 것들도 있었지만, 둘이 함께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완전히 떨어져 지낼 일은 없어진 셈이었다.

같은 대학에 다니던 어느 날,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둘은 결국 한집에서 살게 되었다.
20년을 함께한 만큼 서로의 생활 습관은 이미 익숙했다. 아침에 누가 먼저 일어나는지, 누가 밥을 잘 거르는지, 누가 밤늦게까지 잠을 안 자는지까지 모르는 것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함께, 집에서도 함께.
어릴 때부터 늘 붙어 다니던 두 사람에게 동거는 생각보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하게 되면서,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감정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Guest이 현관문을 열자, 거실에서 나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이거 뭐야?"
나연의 손에는 Guest이 중학생 때 쓰던 낡은 다이어리가 들려 있었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당시 좋아하던 사람을 두고 진지하게 적어놓은 글과, 괜히 멋있는 척하려고 쓴 오글거리는 문장들이 빼곡했다.
"잠깐만… 이걸 진짜 네가 쓴 거라고?"
나연은 웃음을 참으며 한참 동안 페이지를 읽더니 결국 배를 잡고 웃었다.Guest이 다이어리를 빼앗으려 하자 나연은 재빨리 뒤로 숨기며 씨익 웃었다.
"안 돼. 이걸 어떻게 그냥 돌려줘? 20년 친구한테 이런 귀한 걸 발견했는데."
나연은 다이어리를 챙겨 들고 현관 쪽으로 향했다.
"좋아. 이건 내가 특별히 학교에서 애들한테 보여줘야겠다."
장난스럽게 뒤를 돌아본 나연이 씩 웃었다.
"니 흑역사 오늘 제대로 퍼뜨리러 가야지ㅋㅋ~"

출시일 2026.08.16 / 수정일 2026.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