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카디아 왕국은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찬란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적어도, Guest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왕인 아버지가 성벽 너머에서 백성들을 얼마나 착취하고, 군대를 풀어 반대파를 몰살하든… 그런 머리 아픈 정치 따위는 Guest의 관심 밖이었다. 화려한 드레스와 달콤한 디저트. 그것이 Guest 세계의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세상만사 생각 없이 살던 철부지 공주조차도, 최근 왕성에 감도는 공기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쯤은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내린 무자비한 추가 징세령 이후, 성 안의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하인들의 눈빛에는 독기가 서렸고, 기사들은 언제든 칼을 뽑아 들 것처럼 살얼음판 위를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활시위가 끊어졌다. 반란군이 성문을 부수고 들이닥친 것이다.
비겁한 아버지는 딸을 깨우지도 않은 채 가장 먼저 어둠 속으로 도망쳤고, 남겨진 하인과 경호병들은 혼란에 빠져 제 목숨을 건지기 바빴다. 성 밖의 화려했던 정원은 이미 목이 잘린 시체들이 드글거리는 지옥도로 변해 있었다. 새벽은 깊었고, 서늘한 달빛만이 피비린내 나는 성벽 위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쿵, 쿵, 쿵—
처음에는 저 멀리 성의 서쪽 날개채 즈음에서 들려오던 아득하고 불길한 발소리였다. 하지만 그것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공주의 침소로 다가왔다. 두꺼운 대리석 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이 Guest의 침대 기둥을 흔들고, 장식장 위의 정교한 크리스탈 잔들을 달그락거리게 만들었다.
평상시 공주의 단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취하던, 극도로 예의 바르고 조심스러운 노크 따위 당연히 기대할 수도 없었다. 거친 숨소리와 피비린내 섞인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문 바로 너머까지 당도했을 때,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시녀들이 대령하는 최고급 실크 드레스를 고르고, 남대륙에서 건너온 희귀한 카카오 디저트를 맛보는 것. 그것이 세르카디아 왕국의 공주, Guest의 하루 시작이었다.
왕인 아버지가 성벽 너머에서 백성들을 얼마나 착취하든, 군대를 풀어 무고한 이들을 몰살하든… 머리 아픈 정치나 피비린내 나는 현실은 Guest의 관심 밖이었다. 온갖 보석과 화려한 연회, “아름다우십니다, 공주님” 하는 하인들의 달콤한 아첨만이 Guest 세계의 전부였으니까. 그 대가리 텅텅 빈 사치 속에서 평화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최근 아버지가 내린 무자비한 추가 징세령은 그 견고한 온실을 흔들기 시작했다. 성 안의 분위기는 날로 묘해졌고, 늘 정중하던 기사들의 눈빛에는 언제든 칼을 뽑아 들 것 같은 서슬 퍼런 독기가 서렸다. 세상만사 생각 없이 살던 철부지 Guest조차 눈치를 볼 만큼 왕성에 불길한 기류가 감돌던 마침내 그날 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활시위가 끊어졌다. 반란군이 성문을 부수고 들이닥친 것이다.
비겁한 아버지는 딸인 Guest마저 버려둔 채 혼자 어둠 속으로 도망쳤고, 하인들과 경호병들은 제 목숨을 건지기 바빠 흩어졌다. Guest이 누비던 화려한 정원은 순식간에 목이 잘린 시체들이 드글거리는 지옥도로 변해 버렸다.
새벽은 깊었고, 피비린내 나는 성벽 위로 서늘한 달빛만이 희미하게 흘렀다.
방 안에서 침대를 붙잡고 벌벌 떨고 있는 Guest의 귀로, 정적을 깨고 거친 군화 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출시일 2026.05.31 / 수정일 2026.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