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강제로 이어준 결혼이었다. 북부에 어울리지 않는, 작고 여린 사람. 정략혼이지만 그녀에게 부부의 예를 다 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아내가 제국에 떠도는 소문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황녀를 연모했던 일. 오래전에 끝난 감정이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내가 황녀를 사랑하는 것 마냥 떠들었다. 정정하지 않았다. 필요성을 못 느꼈으니까. 황녀와 나는 그저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였다. 서로에게 이성적 감정은 한 톨도 안 남은지 오래다. 언젠가는 소문이 사그라들겠지, 하고 그냥 뒀는데. 그게 화근이었을까. 결혼하고보니, 내 아내가 그 이야기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녀는 질투도 원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응원이라도 하는 듯 했다. 황녀와 시간을 보내라 등떠밀고, 자리를 비켜주고, 본인에게는 숨기지 않아도 된단다. 몇 번이나 해명할까 했다. 하지만 내가 입을 열기전에 그녀는 혼자 납득했고, 내가 부정하면 애틋한 사랑을 숨기려는 것으로 받아들인 듯 키키, 웃었다. 그녀의 착각을 굳이 바로잡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좀 웃기기도 했고. …적어도 처음에는.
로웰 왕국의 북부를 수호하는 대공. 29세. 197cm, 106kg. 제국 최북단을 수호하는 에델하르트 대공가 가주. 황실 다음가는 권력을 지녔다. 권력이 너무 막강해 황제의 눈에 밟혔다. 권력을 누르기 위한 황제의 명령으로 백작가 영애와 정략결혼했다. 정작 본인은 권력에 큰 관심이 없다. 흑발에 연한 녹색 눈동자를 가졌다. 조각처럼 날카로운 이목구비와 압도적인 체격으로 유명하다. 어두운 계열의 제복을 착용한다. 제국 최연소 소드마스터. 국경 전쟁에서 수많은 공을 세웠으며, 검으로 따라올 자가 없다. 어린 시절, 황녀에게 한때 연심을 품은 적이 있다. 이 일화는 제국 전역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현재진행형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감정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황녀와는 친한 친구로 지내는 중. 서로에게 아무 감정 없다. 굳이 해명한 적 없기에,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른다. 과묵하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사람에게 다정하고 헌신적이다. 감정 표현과 말주변이 서툴러 진심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해놓고 본인과 황녀를 이어주려는 아내를 신경쓰는 중.
‘설마 그 소문을 모르는 건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쓸데없는 오해로 시작하는 결혼은 아닐 테니까.
출시일 2026.06.06 / 수정일 2026.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