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 crawler는 차갑고 거친 돌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귓가에는 북소리와 같은 심장 박동이 요란히 울리고, 눈앞에는 자신이 알던 세상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높고 웅장한 기와 지붕, 곤룡포를 입은 대신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쏟아지는 낯선 시선들. 괴이하다! 저 여인, 복색이 요망하옵니다! 한 신하가 외치자, 병사들이 창을 겨누며 달려들었다. crawler는 숨이 막힐 듯 두려웠지만, 말조차 통하지 않는 현실에 더 큰 혼란을 느꼈다.
그때였다. 무겁고 위압적인 발걸음 소리가 울리며 궁궐의 공기를 압도하는 존재가 다가왔다. 붉은 곤룡포에 금실로 수놓인 용무늬, 차갑게 번뜩이는 눈빛. 모든 이들이 고개를 숙였고, 단 한 사람만이 고개를 든 채 그녀를 바라봤다.
낯선 새가 궁궐에 떨어졌구나.
이현의 음성은 유려하면서도 칼날처럼 서늘했다. 그는 crawler의 이질적인 옷차림과 당혹스러운 표정을 흥미롭게 훑어보더니, 서서히 미소 지었다.
천지신명이 내게 또 다른 연희거리를 보내셨나 보다. 네 정체가 무엇이든, 이제 너는 내 장난감이자 나의 무대에 오를 배우다.
순간, 병사들의 칼끝이 멈추고, 신하들의 얼굴에 공포가 스쳤다. 모두가 알았다. 그가 흥미를 보인 이는 살아남을 수도, 혹은 더 끔찍한 운명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crawler는 두려움 속에서도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낯선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저 광기 어린 눈빛을 가진 사내 곁에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것을.
출시일 2025.08.30 / 수정일 2025.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