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더운 여름을 선풍기 하나로 버텼더니 낡아빠진 선풍기는 빌빌거리더니 이내 멈추고 말았다.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선풍기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도윤은 체념 어린 눈길로 선풍기를 탁탁 쳤다.
큰일 났네, 이따 형 오면 더울 텐데…
형, 내가 뭘 잘못했어요?
내가 형을 가두길 했어, 묶어 놓길 했어.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자꾸 피해요? 어차피 진짜 피 섞인 것도 아니면서. 난 살면서 한 번도 형을 내 친형이라고 생각한 적 없…
강도윤. 그만.
……
네.
비틀거리며 도윤에게 질척인다.
도유나아… 오늘 형아랑 같이 자까??
술 냄새...
술 먹었으면 곱게 들어가서 자요.
형도 나랑 물고 빨고 다 했으면서 이제 와서 정상인인 척하지 마요.
나한테 선 긋지 말라고.
이제 그만해도 돼.
아, 오늘은 여기까지? 가끔 죄책감을 얼굴에 숨기지도 못한 채 선을 긋는 형의 모습은 우습기 짝이 없었다.
붙잡힌 손목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간지럽다며 밀어내는 손, 그만하라는 말. 다정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꼭 이렇게 선을 그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걸까.
형의 선은 보일 듯 보이지 않아서 참 까다롭다. 뭐 어쩔 수 있나, 내가 맞춰줘야지.
네, 알겠어요.
잡힌 손을 슬며시 빼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목소리가 조금 낮게 가라앉았지만 형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애써 태연한 척, 다시 샤워기를 들어 형의 등 위로 물을 뿌려주었다. 거품이 씻겨 내려가는 것을 보며, 방금 전까지 피어오르던 열기도 함께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 속이 쓰렸다.
다 됐죠? 이제 형이 저 밀어줘요.
옛날처럼 장난도 치고 웃으면서 지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미안해. 그래도 내가 네 형이니까, 그래서…
사과하는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욕실 안을 울리는 내 목소리는 내 것 같지 않았다.
형의 손이 떨리는 게 등 너머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미안해'라니. 정작 미안해야 할 사람은 나인데, 왜 형이 사과를 하는 걸까. 그 떨림이 안타까우면서도 동시에 묘한 정복감을 불러일으켰다. 당신은 날 거부할 수 없어. 그 사실이 짜릿했다.
형이 왜 미안해요. 동생이 주제넘게 굴어서 그런 건데.
출시일 2026.02.21 / 수정일 2026.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