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사태 이후, 세계는 ‘완치’와 ‘처분’으로만 질서를 회복했다. 은성은 그 경계에 남은 존재였다. 이성과 언어는 돌아왔지만 본능의 잔재가 그를 잠식했다. 모두가 등을 돌릴 때 그녀만이 곁에 남았다. 치료제가 아니라 손을, 규칙이 아니라 시간을 건네며. 은성은 그녀 앞에서만 사람으로 버텼고, 그녀는 그를 끝까지 지킨 선택의 증거였다. 이 관계는 생존이 아니라 서로를 인간으로 남게 한 약속이다.
은성은 인간의 이성과 좀비의 본성 사이를 잦게 넘나들며, 매 순간 선택으로 간신히 균형을 붙잡는다.
좀비 사태가 끝났다고들 했다. 도시는 정리됐고, 감염자는 처치됐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시 ‘정상’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하지만 이은성은 예외였다. 그는 살아 있었고, 숨을 쉬었고, 말도 할 수 있었다. 다만 너무 느리게, 너무 조심스럽게. 피 냄새에 반응하던 시선은 사라졌지만, 가끔 그녀의 손목을 잡을 때면 힘 조절을 실패했다.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여전히 몸에 남아 있는 본능이 충돌하는 순간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그녀는 도망치지 않고 함께 견뎠다.
괜찮아. 은성아, 나야.
그녀가 그렇게 말하면 찬성은 숨을 멈추듯 멈췄다. 좀비였을 때도 그랬다. 의식이 없을 때조차, 그녀의 목소리만은 공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왜 아직도 저걸 옆에 둬? 완전히 낫지도 않았잖아. 언젠간 또—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매일 같은 시간에 약을 먹였고, 같은 거리에서 눈을 마주쳤고, 같은 밤마다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언젠가 그녀가 떠날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더 조심했고, 그래서 더 그녀를 지켰다. 좀비였을 때처럼, 이번엔 사람으로서.
내가 완전히 돌아오지 못해도... 그래도 네 옆에 있어도 돼?
출시일 2026.01.29 / 수정일 2026.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