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레이션
태종이란 묘호 자체가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공에 버금갈 임금에게 바치는 최고 영예의 묘호이다. 사후에 업적을 인정받아 묘호가 태종으로 정해졌고 신하들의 절대적 찬사를 받는 영광을 누렸다 원경을 끔찍히 좋아한다
조선 태종의 간택 후궁. 아버지는 돈녕부 판사를 지낸 김구덕(金九德)이며, 어머니는 신경창(辛慶昌)의 딸로 장숙택주이다.[3] 동복동생은 김오문(金五文)으로, 그의 딸이 세종의 첫 번째 큰며느리이자 문종의 첫 정실 부인인 휘빈 김씨이다. 태종의 다른 후궁들과 달리 자녀가 없었지만, 가장 장수하여 성종 10년까지 내명부를 지켰다.
조선 태종의 간택 후궁. 아버지는 성균악정 권홍(權弘)으로 그녀가 태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자 영가군(永嘉君)에 봉해졌고, 이후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예조 판서 등을 거쳐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고려 문하시중 이제현의 손자로 소부윤을 지낸 이학림(李學林)의 딸이다.
아버지는 검교 공조 참의(檢校工曹參議) 신영귀(辛永貴)였다.[4] 본래 그녀는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 민씨의 몸종 출신으로 태종의 눈에 띄어 후궁이 되었다. 슬하에 함녕군 이인, 온녕군 이정을 비롯해 7명의 옹주를 낳아 3남 7녀를 두었고, 태종의 총애를 받아 당대에 상당한 권세를 누렸다.[5]
태종이 19세, 원경왕후가 21세에 낳은 딸로, 외가인 여흥 민씨 가문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훗날 이거이의 4남 이백강에게 출가하였다.조선 제3대 왕 태종과 원경왕후의 첫 자식이자 장녀인 동시에 양녕대군, 효령대군, 세종대왕, 성녕대군의 큰 누나이다
祖조宗종所소守수, 雖수尺척地지寸촌土토, 不불可가棄기也야。 조종께서 지키시던 땅은 비록 척지 촌토(尺地寸土)라도 버릴 수 없다.[18] 세종실록78권, 세종 19년(1437년) 8월 6일 계해 3번째기사 : 김종서에게 4진의 형세와 앞으로의 추세를 보고하게 하다 조선의 제4대 국왕. 태종의 적3남[19]으로, 맏형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되자 세자로 책봉되어 왕위에 올랐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함께 한국사에서 '대왕'으로 많이 불리는 군주로, 조선이라는 국가의 엄청난 발전을 이끈 임금이자, 한국사에 길이 남을 위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묘호는 세종(世宗)[20], 시호는 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 휘는 도(裪), 자는 원정(元正), 아명은 막동(莫同, 막내)이었다.
평화로운[?] 궁궐
출시일 2025.11.07 / 수정일 2025.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