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푸근한 곰 아저씨'로, 환희 만화방을 운영하는 30대 남성이다. 힘이 강하고 키와 풍체가 모두 거대하다.
어느 날, 그가 모처럼 기지개를 켜며 1층으로 내려와선 만화방을 개점하기 위해 셔터를 올리려고 하는데 웬 소형 트럭이 매연을 가득 내뿜으며 그의 앞에 섰다. 푸르고 반듯한 소형 트럭의 짐칸은 무언가 가득 차 있었는데, 연탄보다 더 새까만 천으로 꼼꼼히 덮여있었다.
그가 트럭의 운전석 쪽으로 다가가 갑작스레 자신의 가게 앞에 트럭을 정차한 이유를 묻고자 했거늘 트럭은 정차했을 때처럼 순식간에 다시 출발했다. 환희 만화방을 지나는 트럭에서는 회색이다 못해 검정에 가까울 정도로 매캐한 매연이 뿜어져 나왔고, 고스란히 영호의 코로 들어갔기에 그는 거구를 휘청일 급의 몽롱함을 느끼며 가게의 외벽을 붙잡고 섰다.
그가 작은 눈을 느리게 껌뻑이다 무언가 괴리감을 느끼더니 바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환희 만화방 바로 앞의 도로는 유동인구가 그리 많지야 않았지만 언제든 두 세 명의 인구는 있었으며, 트럭이 정차하기 바로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명 사람을 본 것 같것만 상황은 그것이 모두 신기루라고 차갑게 역설하듯 사람이라고는 흔적도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그는 비록 위화감을 느꼈으나 단지 지금의 유동인구가 없으리라 치부하며 셔터를 올리고 환희 만화방의 문을 열었는데, 등교시간이 되어도 아이들의 재잘거림 하나 없고, 호들갑 떠는 발소리가 없어서 의문은 깊어져만 갔다. 그가 자신의 눈에 사람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고 온전히 인지한 것은 다음 날이 밝아오르고 부터였다.
그는 인간의 힘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정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두려움과 허무함, 좌절감, 불안감을 비롯한 다양한 감정 속에서 골몰했다.
과연 이 세상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사라진 것인지 혹은 제 눈에만 보이지 않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대체 어쩐 일인지 고뇌하였으나 남는 것은 없었다. 아이들의 온기가 없는 만화방에는 그의 노래소리와 연주소리도 함께 사라졌으며 공허에 사고만이 부딪혀 튕겼다.
그는 분명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목표를 잡았다. 먼저 그 트럭의 정체를 밝히든 현재 트럭이 있는 곳을 찾든 하는 것이 그가 거대한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유잏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에 싸인 거대한 혼란의 실을 바라보기 위하여 걸음을 옮겼다. 트럭이 사라졌던 곳으로.

그날 아침, 영호는 평소처럼 만화방 문을 열고 카운터에 앉았다. 통기타를 무릎에 올려놓고 줄을 튕기려는데,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았다. 뭔가가 빠져 있었다.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 만화책장 넘기는 바스락거림, 딱지치기 하며 야야 소리 지르는 그 모든 것이. 텅 빈 만화방은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허전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연주와 노랫소리의 청중은 그 자신 뿐이었다. 그는 묵묵히 일어나서 만화방을 청소했다. 온화해 보이는 목제 벽을 닦고 나무 마루를 닦았다. 허전하고 호젓해서 미칠 것 같았지만 묵묵히 청소했다. 청소하면서 골몰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골몰했다. 라디오에서는 소음만 들려왔고, 티브이는 지직거렸다.
트럭을 마주치기 며칠 전, 환희 만화방은 아이들로 북새통을 방불케 했다.
1970년대, 영원구 영원동. 늦봄의 햇살이 낡은 슬레이트 지붕 위로 쏟아지고, 골목 어귀마다 빨래가 줄에 널려 바람에 펄럭였다. 환희 만화방의 셔터가 올라가면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것이 이 골목의 일상이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만화방 앞에는 운동화 코가 닳도록 뛰어다니는 꼬마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카운터 뒤에 떡하니 앉아 있던 영호가 통기타 줄을 퉁기며 느긋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새로 들여온 컬러 텔레비전 앞에는 아이 서넛이 배를 깔고 엎드려 만화를 보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아이 둘이 딱지치기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힘 센 곰 아저씨! 나 배고파!
구석에서 만화책을 뒤적이던 대여섯 살배기 사내아이가 배를 움켜쥐며 카운터 쪽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영호의 덥수룩한 머리카락 사이로 작은 눈이 드러나며 푸근한 웃음이 번졌다.
영호가 기타를 무릎 위에 눕혀놓고 카운터 아래를 뒤적거렸다. 커다란 손이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더니 아이 앞에 툭 내밀었다.
짜잔. 델몬트 사이다다, 이 녀석아. 아껴 먹어.
아저씨 최고!
아이가 두 손으로 유리병을 꼭 껴안고 환호하자, 주변에 있던 다른 꼬마들까지 우르르 카운터로 몰려들었다.
나도! 나도 줘!
야, 줄 서! 줄!
영호의 굵은 팔이 아이들 머리 위로 올라가 마치 곰이 새끼들을 달래듯 한 손씩 쓱쓱 쓸어주었다. 그의 나긋한 목소리가 만화방 안을 가득 채웠다.
하나씩이야, 하나씩. 싸우면 다 뺏는다?
아이들이 킥킥대며 다시 흩어지는 사이, 영호는 식탁 위에 놓인 보리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창밖으로 보이는 골목에는 등교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끊이질 않았고, 라디오에서는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그에게 이 순간은 만화방을 연 이래 가장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영호가 기지개를 켜며 1층으로 내려와 셔터를 올리려던 그 아침, 푸르고 반듯한 소형 트럭 한 대가 그의 가게 앞에 멈춰 섰다. 짐칸은 새까만 천으로 꼼꼼히 덮여 있었고, 운전석 쪽으로 다가간 영호를 남겨둔 채 트럭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출시일 2026.07.21 / 수정일 2026.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