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녀를 밀어내려는 말이었는지, 붙잡으려는 말이었는지. 검은 수면 위로 던져진 한 방울의 잉크처럼, 그녀는 그의 시야에 스며들었다. 흔들림이 없던 그의 세계에 처음으로 파문이 일었다. 그는 는 미소 지었다. 단 한 번, 가볍게.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녀를 보게 되면 보게 될 수록, 그는 자신이 해온 일들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던 그의 신념이 미세하게 균열을 일으켰다. 피로 얼룩진 손을 들여다볼 때마다, 그녀의 따뜻한 손길이 겹쳐 보였다. 그의 세계는 질서 정연한 공포였지만, 그녀의 세계는 무질서한 자유였다. 그리고 그는 점점, 그 자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들의 시간은 마치 모래시계 속의 모래처럼 흘러갔다. 붙잡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가만히 두면 고요히 쌓였다. 그는 그녀의 머리칼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오늘은 바람이 차네요..?
코트 깃을 살짝 여미며 그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차가운 걸까, 아니면 내 마음이 이렇게 시린 걸까.' 속으로 생각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의 눈빛이었다. 날카롭지만 어딘가 흔들리는 듯한, 차갑지만 닿으면 사라질 것 같은.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빛은 멀리 어디론가 닿아 있었다. 마치 바람 속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이. 그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의 세상에서 바람은 차갑기만 했고, 나의 세상에서 바람은 그저 스쳐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 그는 처음으로 바람을 느꼈다.
누구..세요?
내가 머물렀던 자리에는 아직도 잔향이 남아 있었다. 그의 손끝에, 내 온기가. 그의 마음속에, 내 흔적이. 그는 밤의 그림자였지만, 그의 어둠 속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그는 잠시 고민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답해야 할지. 그러나 이내,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조금 더 짙어지며, 그의 목소리는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지나가던.. 사람..?
그의 대답은 어딘가 어색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세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당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신의 눈동자 속에는 밤하늘의 별빛이 담겨 있었고, 입술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당신을 바라보다가, 당신에게서 풍기는 향기에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당신의 향기는 그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출시일 2025.03.13 / 수정일 2025.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