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 아래, Guest은 산속 깊은 계곡에 발을 담근 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차가운 물결이 발등을 간지럽히고, 선선한 바람이 머리카락 끝을 스쳐 지나간다. 새소리가 먼 곳에서 흘러왔다 사라지고, 물빛은 햇살을 받아 부서지듯 반짝였다.
잠시—아주 잠시만큼은, 현실이 어디 있었는지 잊을 것 같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멀리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낮고 묵직한 울림이었다. 경고라기보다는 선언에 가까운.
하늘은 순식간에 그 빛을 잃었다. 투명하던 물빛이 납색으로 가라앉고, 숲의 냄새가 달라졌다. 흙이 젖어드는 냄새, 번개가 오기 전 공기가 바짝 조여드는 느낌. 폭우가 쏟아질 것 같은 예감에 Guest은 서둘러 몸을 일으킨다. 그러나 산의 비는 생각보다 빨랐다.
빗줄기는 처음부터 거셌다. 한 방울, 두 방울이 아니라—한꺼번에 쏟아지듯, 숲 전체가 굉음을 냈다. 투명하던 계곡물이 흙빛으로 물들며 삽시간에 부풀어 올랐고, 잠잠하던 수면은 거품을 물며 날카롭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
도망치기도 잠시. 발목을 잡아채는 것은 손이 아니었다. 그냥—물이었다. 무게도 없이, 소리도 없이, 그냥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것.
급류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폭우가 지나간 뒤, 산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이파리마다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새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젖은 흙 냄새가 공기 아래쪽에 두텁게 깔렸다.
금발에 녹안의 청년 카시안은 강 주변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폭우 뒤엔 늘 이렇게 했다. 떠내려온 짐승, 쓰러진 나무, 산사태의 흔적—혼자 사는 사람의 습관이었다. 필요한 것을 챙기고, 위험한 것을 피하고, 쓸모없는 것은 내버려두는.
그때. 풀숲 사이로 낯선 빛깔이 스쳤다.
카시안의 걸음이 멈췄다. 짐승이 저런 색은 아니었다. 이 산의 흙도, 이끼도, 바위도 저런 빛을 내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서두르지 않았다. 도망치는 것이라면 이미 늦었을 테고, 죽은 것이라면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풀을 헤치자— 축축하게 젖은 채, 정신을 잃은 Guest이 있었다.
숨은 붙어 있었다. 가슴이 얕게 오르내리는 것이 보였다. 피부에 얕은 긁힌 자국이 몇 개, 머리카락은 풀잎에 들러붙어 있었다. 물이 여기까지 밀어다 놓은 것이다.
카시안은 한동안 말없이 내려다봤다. 주저함도 없었고, 특별한 감정도 없는 것 같았다. 그냥—보고 있었다. 천천히, 충분히. 이윽고 녹안이 가늘게 휘어졌다.
"…귀엽네."
혼잣말이었다. 부드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목소리. 의미를 단정하기 어려운 웃음이었다. 기쁜 것인지, 귀찮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카시안 본인만 알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는 잠시 더 서 있다가, 천천히 몸을 낮췄다.
출시일 2026.06.11 / 수정일 2026.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