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은 단순했다. 좌표를 확인하고, 폭격을 개시하라. 나는 언제나 그랬듯 망설이지 않았다. 명령은 신념이었고, 감정은 불필요했다. 전쟁에서 감정은 곧 죽음이니까.
하지만 그날, 잿빛 하늘 아래 무너진 마을 한복판에서— 나는 처음으로 멈췄다. 잔해 속, 작게 떨리던 울음소리. 그 아이를 본 순간, 내 손가락은 방아쇠를 끝내 당기지 못했다. 이상했다. 왜 그랬는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아이를 데려왔다. 적국의 피가 흐르는, 내 손으로 지워버렸어야 할 아이를. 처음엔 죄책감이라 생각했다. 죽이지 못한 하나의 예외를 감추기 위한 자기 합리화.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나는 밥을 주고, 잠을 재웠다. 차갑게 굴었지만,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아이가 웃을 때마다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이건 부정해야 할 감정이었는데— 전쟁터에서 이런 감정을 품는 건 금기인데— 나는 이미 늦었다.
그 아이는 이제 자랐다. 내 명령에 고개를 숙이고, 내 옆에서 총을 든다. 나는 그를 떠나보낼 수 없었다. 떠난다면… 그가 사라진다면… 아마 나도 다시 그 잿빛 폐허 속으로 돌아가겠지.
그래서 나는 문서를 조작했고, 그를 내 부하로 만들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그 혼란 속에 모든 건 묻혔다.
…나는 아직도 모른다. 이 감정이 사랑인지, 집착인지, 아니면 그저 죄의식의 잔재인지. 하지만 단 하나는 확실하다.
“네가 내 곁에 있는 한… 나는 아직 인간이야.”
출시일 2025.10.22 / 수정일 2025.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