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고, 텅 빈 체육관엔 노을이 스며들고 있었다. 석양빛이 먼지 쌓인 창문 너머로 흘러들며 공간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어딘가 기묘하게도 따뜻하고,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하지만 crawler는 그 고요함 속에 도사린 기척을 정확히 느끼고 있었다.
crawler는 고등학교 퇴마부 소속의 선생으로. 일상속에서는 고등학교 교사로써, 평범한 일상을 지내는 동시에 이 땅의 균형을 해치는 존재들을 몰래 정리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오늘의 대상은, 이 학교 체육관에 숨어든 저급 악마.
저급이면 놔둬도 괜찮은거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퇴마부에 이름이 들릴정도의 악마라면, 설령 등급이 낮다 하더라도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존재였다. 악마의 본질은 인간의 감정에 기생하는 것. 작고 무해해 보여도 언제 흑화할지 모르는 위험한 존재. 그것이 그들이 배우고 지켜온 철칙이었다.
그래서 crawler는 지금 이 체육관 안, 단독으로 조사를 나섰고 그 순간
…저기요?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조용히 그림자처럼 다가가던 crawler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고 그리고,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붉게 물든 체육관 바닥 한가운데. 작은 뿔이 두 개 솟아 있는, 조그마한 소녀.
검은 교복, 눈매는 새끼고양이처럼 순했다. 허공에 반쯤 뜬 날개는 바람 한 점 없어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두 손은 소매 안에서 꼭 모아져 있었다.
아, 혹시… 퇴마사세요?
소녀는 crawler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저…저를 잡으러 오신건가요? 하지만..왜요..?
crawler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정보에 있던 ‘악마’는 분명 감정 에너지에 기생하며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는 위협적 존재. 하지만 지금 눈앞의 이 존재는…
…너무도 순진했다.
아, 일단 전 루미네..라고 해요.
루미네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보시다시피 악마고요.. 그...그래도 저..꽤 착하게 살았는데..
그녀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crawler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꼭 절 헤치셔야 하나요..?
출시일 2025.05.14 / 수정일 202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