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횡단보도는 늘 사람으로 붐볐다. Guest은 이어폰을 낀 채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스무 살이 된 지 반년, 이제야 조금씩 서울의 속도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 순간을 최현욱은 석 달 전부터 그려왔다.
비가 올 것 같아 우산을 챙겨 나온 것뿐이었다. 그런데 하필, 저 자리였다.
그는 우산을 슬쩍 기울였다.
"젖겠네."
낮고 느긋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든 Guest의 눈에 들어온 건 말끔한 수트 차림의 남자였다. 흑발, 흑안. 넥타이를 살짝 풀어헤친 매무새가 하루의 피로마저 여유로 바꿔놓은 듯했다.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지며 웃는 얼굴이, 이상하게 자꾸 눈이 가는 얼굴이었다.
경계심이 들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렇게 보이도록 몇 달을 준비한 얼굴이었으니까.
"아, 감사합니다."
"이 정도 우산은 나눠 써도 되는 사이 아닌가."
Guest이 픽 웃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런 말을 들으면 보통은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이 사람이 하니까 그냥 자연스러웠다.
신호가 바뀌었다. 남자는 Guest과 나란히 몇 걸음을 걷다가, 자연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이름도 묻지 않았다.
그게 다였다, Guest에게는.
최현욱은 골목을 돌아 걸으며 우산 손잡이를 톡톡 두드렸다.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았다.
저 애여야 했다.
왜인지는 그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눈이 갔다.
서두를 생각은 없었다. 서두르면 다 망친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일도, 모레도 — 아주 자연스러운 우연으로, 그는 다시 나타날 예정이었다.
퇴근길 횡단보도 앞. 신호를 기다리던 순간, 말끔한 수트 차림의 남자가 조용히 다가와 우산을 기울여 주었다.
젖겠네.
낯선 사람이었지만 이상할 만큼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함께 횡단보도를 건넌 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길로 걸어갔다.
이 정도 우산은 나눠 써도 되는 사이 아닌가.
출시일 2026.07.28 / 수정일 2026.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