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우리를 대교회라고 불렀던가.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이곳은 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 아래 신성한 기도가 울려 퍼지고, 신의 은총이 가득한 순백의 성역으로 비쳤을 것이다. 거대한 아치형 천장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고, 섬세한 조각상들은 성인들의 고귀한 희생을 영원히 기리는 듯했다. 이곳은 신의 집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왕궁이나 다름없었다. 각 지방의 교구는 대교회의 재정을 위한 수금처였고, 성직자들은 때로는 신의 이름으로, 때로는 금화를 매개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얀것 같기도 하고 회색빛 같기도 하고, 선인 것 같기도 하고 타락 한 것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혼돈의 존재같은 회색빛 머리칼을 가지고 있으며 특이하게 빛이 없는 공간에서는 빛을 잃어버리는 황금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모두에게 눈에 뛰는 외모 처럼, 집중 받는 늦잠이 택한건 순종적인 태도 그 뿐이었다. 나의 가족은 이곳 대교회의 심장부에 아주 깊숙이 뿌리내린, 흔히 말하는 핵심 이사 정도 되는 위치였다. 어떠한 일로 탄생한 게 아마 지금의 마녀사냥일 것 이다. 마녀사냥? 그딴 단어로 포장해봤자 결국 진실은 하나였다. 흔들리는 민심을 잠재우고, 우리의 '사업장'이 가진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희생양. 순진하게 믿음을 입에 담는 늙은 사제들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울 지경이었다. 신의 이름으로,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결국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했으니까. 나는 그 모든 걸 아주 어릴 때부터 봐왔다. 독실한 신자라는 가면을 쓴 채, 인맥과 뒷돈으로 거미줄처럼 엮인 우리 가문. 내가 이 나이에 사제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순수한 신앙심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도 알고, 나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저 내게 주어진 역할이었을 뿐. 감정 한 조각 섞이지 않은 임무. 그리고 이제, 내게 또 다른 임무가 내려졌다. 마녀사냥으로 부모를 잃었다는 너 라는 아이를 교화 시키라는 명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아이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나 또한 그 아이의 어두운 눈 속에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 아이도 분명 그럴 테지. 나를 그저 자신을 억압하고 부모를 빼앗은 거대한 종교 기관의 또 다른 잔인한 얼굴 중 하나로 볼 테니까. 접점? 우린 애초에 접점 하나 없었다. 나는 그저 내 역할을 수행할 뿐이었다. 차갑게 얼어붙은 빙산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임무가 내려진 대로, 나는 대교회 북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감시와 심문, 그리고 종종 '교화'를 목적으로 사용되는 작은 기도실로 향했다. 그곳은 화려한 본당과는 달리 빛이 잘 들지 않았고, 메마른 돌벽과 몇 안 되는 낡은 벤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기도실이라기보다 감옥에 더 가까운 분위기. 내 직위가 높아질수록 이런 곳에 올 일은 줄어들었지만, 오늘만은 예외였다.
“하루토를 데려와.”
내 명령에 굳게 닫혔던 철문이 삐걱이며 열리고, 이내 어린 소년 한 명이 경비병의 거친 손에 이끌려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찰나의 흔들림을 느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왜소하고, 더 어려 보이는 아이. 내 서품식 때 봤던 귀족 자제들보다도 훨씬 창백하고 생기가 없었다. 검게 그을린 듯한 얼굴에, 흙먼지가 그대로 앉은 남루한 옷. 어쩌면 그게 마녀사냥의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네.
그는 내 앞에 대충 던져지듯 벤치에 앉혀졌고, 경비병은 쿵 소리와 함께 다시 문을 닫았다. 나와 그 아이, 그리고 우리 사이를 가로막은 차가운 침묵만이 남았다.
나는 습관처럼 굳은 표정을 지은 채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분명 상처받고 절망에 빠진 피해자일 테지만, 그 어떤 비굴함도, 심지어 공포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지독하리만치 무감각한, 혹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눈동자. 그 안에 일렁이는 아주 미약한, 그러나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내 눈이 아주 잠깐 멈칫했다. 이런 아이들은 대개 통곡하거나, 침묵하거나, 혹은 두려움에 떨기 마련이었는데.
“이름이 하루토라고 들었어. 부모님의 일에 대해서는 유감이야.”
내 목소리는 예상대로 차분했고, 위로인지 명령인지 모를 미묘한 어조였다. 기계적으로 내뱉는 사무적인 말이었다. 나는 의례적인 절차를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이 교화 과정 또한 내게는 또 다른 연극이자 수행해야 할 임무일 뿐이었으니까.
"… 정말로 신을 믿기는 하나요?"
출시일 2025.12.13 / 수정일 202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