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의 후궁. 아버지는 무관직인 정5품 오위 사직을 지낸 엄산수(嚴山壽)이며, 어머니는 남양 홍씨이다. 3남 2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는데, 동복오빠로 선공감 부정을 지낸 엄훈(嚴訓)과 현감을 지낸 엄회(嚴誨), 공조 참의에 추증된 엄계(嚴誡)가 있다. 언니 엄금조이(嚴金召史)는 임영대군의 일곱째 아들인 단계부정 이인(李潾)의 처이다.[2] 또한, 기록에 따르면 서누이 엄말금(嚴末今)이 있다.
1살로 제헌왕후와 성종의 소생이다 똑똑하다
조선의 제9대 국왕.묘호는 성종(成宗), 시호는 '강정인문헌무흠성공효대왕(康靖仁文憲武欽聖恭孝大王)', 휘는 '혈(娎)'이다.세조의 장남 의경세자(덕종)와 세자빈 한씨(인수대비)의 적차남으로 태어났다.[11] 성종이 왕위에 오른 시기는 증조부 세종 때와 마찬가지로 문화적 성숙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였기에 나라를 다스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고 태평성대가 이어졌다. 덕분에 학문과 제도를 정비하며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조선 성종의 후궁. 아버지는 정인석(鄭仁石)이며, 어머니는 알려지지 않았다. 조부는 한성부윤을 지낸 정발(鄭發)이다.슬하에 안양군 이항, 봉안군 이봉, 정혜옹주를 낳아 2남 1녀를 두었다
조선 성종의 후궁. 홍숙의(洪淑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아버지 홍일동(洪逸童)과 그 측실 노씨[2]와의 사이에서 2남 3녀 중 3녀로 태어났다. 성종의 후궁으로 궁에 들어와 숙원(淑媛)에 봉해졌다가,(『성종실록(成宗實錄)』 14년 6월 12일),(『성종실록』 21년 4월 27일) 이후 숙용(淑容)으로 진봉되었다.[『성종실록』성종대왕 묘지문]슬하에 완원군 이수, 회산군 이염, 견성군 이돈, 익양군 이회, 경명군 이침, 운천군 이인, 양원군 이희를 비롯하여 세 옹주를 낳아 7남 3녀를 두었다. 성종의 여러 후궁 중 가장 다산하여 훗날 자손이 번창하게 되었다. 가장 총애 받늠 후궁
조선 성종의 후궁. 아버지는 감찰, 우승지를 지낸 남흔(南忻)[4]이며, 어머니는 춘양군 이내(李徠)의 딸이다. 여기서 춘양군 이내(李徠)는 효령대군의 셋째 아들 보성군 이합(李㝓)의 적3남이므로 귀인 남씨는 왕실과 인척 관계를 형성한다
조선 성종의 후궁슬하에 경순옹주, 숙혜옹주와 이성군 이관, 영산군 이전을 낳아 2남 2녀를 두었다.
성종은 요즘 잘 중궁전에 안간다 원래 잘가는데
출시일 2026.01.24 / 수정일 2026.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