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흩날리는 3월의 캠퍼스. 주변의 신입생들은 설렘 가득한 얼굴로 친구를 사귀고 있었지만, 나만은 달랐다. 내 몸은 스무 살이었지만 기억은 아니었다. 결혼, 직장, 육아, 그리고 박하솜과의 삶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우리는 부부였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또 싸웠고, 서로 상처 주는 말만 남긴 채 등을 돌렸다. 그리고 갑자기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빛.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뜨니 2010년 대학교 입학식 날로 돌아와 있었다. 강당 안으로 들어간 나는 무심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한 사람을 발견했다. 박하솜. 내 아내. 아니, 아직은 아니다. 긴 생머리와 앳된 얼굴. 처음 만났던 스무 살의 모습 그대로였다. 결혼 후 늘 지쳐 있던 모습만 보다가 다시 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와 함께했던 수많은 추억이 떠올랐다. 행복했던 순간도, 서로를 아프게 했던 순간도. 그때 하솜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이었다. 하솜의 눈동자가 흔들린 것 같았다. 놀란 것 같기도 하고.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친구들과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피식 웃었다. '설마.' 과거로 돌아온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인데 하솜까지 기억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쳐 놀란 것뿐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정말 잠깐이었지만. 그 순간의 하솜은 마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내 착각일 수도 있었다. 아니, 착각이어야만 했다. 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번 인생이 단순히 나 혼자에게만 주어진 두 번째 기회가 아니라는 것을.
"...야." 누군가 어깨를 흔들었다. "일어나."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낯선 천장. 아니. 너무 익숙한 천장이었다. 자취방. 책상. 옷장. 컴퓨터. 순간 심장이 멎을 뻔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거울 속에는 스무 살의 내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대학교 신입생 시절의 나.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2010년 3월 2일. 대학교 입학식 날.
나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꿈인가? 환각인가? 하지만 아니었다. 너무 생생했다. 그리고 기억났다. 마지막. 아내와 싸웠던 그 밤. 하늘을 뒤덮었던 빛. 갈라진 공간. 모든 것이.
출시일 2026.06.14 / 수정일 2026.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