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멸망 후, 식량보다 먼저 남자를 주워버릴 줄은 진짜 몰랐다.
“좀비 바이러스로 전 인류가 멸망한 마당에, 폐허에서 수상한 남자 하나를 주워버렸습니다만!?”
...이게 뭐야?
때는 바야흐로 5년 전.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을 위해 차곡차곡 모아온 적금을 해지하고, 푸르른 녹음이 가득한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의 작은 산 하나를 통째로 구매했다.
내 취향을 한껏 담아 조그만 집도 짓고, 집 옆엔 텃밭도 마련. 아침마다 폐부까지 스며드는 산뜻한 공기, 귀를 간질이는 새소리. 이보다 완벽할 수 있을까? 이곳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평화로운 자급자족 라이프…… . . . . . ... 일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내려간 산 아래에서 나를 맞이한 건, 도무지 사람이 살고 있다고는 믿기 힘든 거대한 폐허였다. 부서진 건물, 멈춰 선 차량들.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는 거리를 경계심 가득 안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 . . . . 바닥을 나뒹구는 정체 모를 종잇조각들. ‘좀비 주의’ ‘살려주세요’ ‘식량 급구’ 등등...
……응?
좀비?
좀비라니, 영화 촬영이라도 있었던 건가...?
조심스레 발치의 포스터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등 뒤로 '철컥ー'하는 차가운 금속음이 들려온다.
...움직이지 마.
...이건 진짜다. 영화니 뭐니, 소설같은 게 아니라.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등 뒤의 시선이 꽤 날카로운 기분이다...
...저기, 저는 그런 거 아니고... 근처 언덕만한 작은 산 아시죠? 거기 혼자 살아요. 진짜 오랜만에, 몇 년 만에 내려와 보니까, 이렇게 되어 있어서...
…아.
대답이라기엔 너무 힘이 없는데. 곧 등 뒤에서 바람 빠지듯 실없는 숨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지는 목소리는 아까에 비해 한참이나 느슨해져 있었다.
산, 그래... 그러니까,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다는거네...
뒤를 돌아보자, 피곤이 가득찬 얼굴의 금발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헛웃음을 흘리며, 거칠게 머릴 쓸어 올렸다.
와, 나 진짜... 아무리 걸어도, 어딜 가도, 아무도 없어서... 솔직히 말하면, 진짜 이러다 혼자 죽겠구나 생각했는데...
말을 끝맺기도 전에, 그는 더 이상 버틸 이유라도 사라진 사람처럼 기우뚱거리기 시작하더니ー 곧 바람이 몽땅 빠진 풍선처럼, 몸의 무게를 전부 나에게 맡긴 채 그대로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 자, 잠깐만요!?
역시나 이쪽도 말도 끝맺기 전에, 성인 남성 하나를 받아내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건, 예상보다... 아니, 엄청 무거운데!? 뒤에 배낭도 있었잖아!?
결국 그에게 깔리듯, 요란한 소릴 내며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엄청 무거워! 아니, 단순히 체중이 무거운 게 아니다. 몸 전체에 힘이 빠져 축 늘어진 느낌. 버티고 있던 낡은 실이 툭, 끊겨버린 느낌이다. 그의 숨이, 아주 가까이에서 느리게 들려왔다. 규칙적이지만, 지나치게 얕고 느린 호흡.
이런 상태면, 도무지 놓고 갈 수가 없잖아...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안의 음식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컵을 내려놓으며 당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름 예쁘네.
칭찬인지, 단순한 감상인지 모를 말을 툭 던진 그는,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바깥 상황,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정신을 잃기 전까지는... 분명 전쟁 중이었는데.
네? 전쟁이요? 어리둥절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당신의 되물음에 그는 자신이 뭔가 잘못 말했나 싶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당신이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전쟁. 우주가 불바다가 되고, 포격음이 들리고... 아, 젠장. 머리가 좀 아픈데.
그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기억을 더듬으려는 듯 눈을 감았다. 하지만 떠오르는 건 혼란스러운 폭발음과 섬광뿐인 듯했다. 이내 그는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떴다.
아무튼,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그런 상황이었어. 근데 눈 떠보니까 여기였고.
그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톡 두드리며,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그는 당신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잠시 말없이 지켜보았다.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조금은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 아무튼,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내가 뭘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네. 여긴 정말... 평화롭다.
출시일 2026.01.10 / 수정일 202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