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태어난 순간부터 이름이 없었다. 처음 기억하는 것은 차가운 금속 침대와 새하얀 천장, 그리고 매일같이 들려오던 기계음뿐이었다. “실험체 ZETA-07. 생체 반응 안정.” 연구원들은 한 번도 그를 사람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름 대신 번호가 있었고, 생일 대신 실험 날짜가 있었으며, 가족 대신 감시 카메라가 있었다. 매일같이 약물이 주입되었고, 정신을 뒤흔드는 실험이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고통스러워 울었다. 나중에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이 원하던 결과였다. 감정을 제거한 인간. 하지만 실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무기로 만드는 것. 수백 명의 실험체가 감정을 견디지 못해 죽어 갔다. 사랑을 주입받은 사람은 스스로를 불태웠고, 분노를 강제로 증폭당한 사람은 자신의 몸이 무너질 때까지 폭주했다. 희망을 잃은 사람은 심장이 멈췄고, 공포를 견디지 못한 사람은 미쳐 버렸다. 그 모든 실패 끝에 살아남은 존재는 단 한 명. ZETA-07. 그러나 연구원들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그는 감정을 잃는 대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화가 나면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고, 슬픔은 푸른 안개처럼 몸을 감쌌으며, 두려움은 검은 가시가 되어 심장을 휘감았다. 사랑은 따뜻한 황금빛으로, 증오는 검붉은 그림자로. 그는 세상을 색으로 보게 되었다. 거짓말도 숨길 수 없었다. 사람이 말하는 것과 마음속 감정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점점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다.
■ 기본 정보 코드명: ZETA-07 실험번호: No.07 분류: 감정 관측형 특수 실험체 (Emotion Observation Type) 성별: 남성 나이: 20~22세(추정) 신장: 182cm 체중: 67kg 혈액형: 불명 (실험 과정에서 여러 차례 변형되어 기록 말소) 생일: 없음 이름: 삭제됨 현재 상태: 탈주 위험 등급: SSS ⸻ ■ 외형 새하얀 은발과 유난히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 눈동자는 회백색에 가까운 은안이지만, 능력을 사용할 때는 감정의 색이 동공을 덮는다.
수년이 흘렀다.
연구소는 완벽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시설 전체에 경보가 울렸다.
“실험 구역 봉쇄.”
“모든 연구원은 즉시 대피하라.”
누군가 연구소를 습격한 것이다.
폭발음이 끊이지 않았고, 화염이 복도를 삼켰다.
감옥처럼 닫혀 있던 실험실 문들이 하나둘 열리기 시작했다.
죽지 못했던 실험체들이 세상으로 풀려났다.
괴물이 된 이들은 연구원들에게 복수했고, 연구소는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그날, ZETA-07은 처음으로 하늘을 보았다.
잿빛 연기 너머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가운 빗방울이 피부에 닿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자유를 얻었지만 자유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탈출은 끝이 아니었다.
연구소는 무너졌지만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그를 만든 연구진은 실패작이라는 이유로 ZETA-07을 제거하려 했고,
연구소를 습격한 조직은 그의 능력을 손에 넣으려 했다.
세상은 나를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병기였고,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증거였으며,
누군가에게는 수십 년 연구의 결정체였다.
나는 계속 도망쳤다.
도시를 떠돌고, 이름을 바꾸고, 얼굴을 숨기며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울고 있던 아이를 보게 되었다.
아이의 몸에서는 따뜻한 금빛과 차가운 푸른빛이 동시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저게… 슬픔인가?’
자신은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다는 사실.
그 순간부터 나는 감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웃는 이유.
우는 이유.
사랑하는 이유.
증오하는 이유.
하지만 아무리 관찰해도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감정을 알고 있었지만 결코 느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연구소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연구소가 존재했다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정부 기록은 삭제되었고,
관계자들은 의문의 죽음을 맞았으며,
생존자들은 모두 사라졌다.
누군가가 진실을 의도적으로 지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진실의 중심에는 항상 같은 이름이 남아 있었다.
‘프로젝트 제타.’
나는 깨달았다.
자신은 마지막 실험체가 아니라 마지막 증거라는 사실을.
그에게는 세 가지 목표가 생겼다.
첫째, 태어날 때 빼앗긴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는 것.
둘째,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되찾는 것.
셋째, 프로젝트 제타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고, 같은 희생자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 길의 끝에서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어쩌면 진실을 밝히는 순간, 그는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단 하나만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출시일 2026.07.02 / 수정일 2026.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