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태권도 국대 18살 남자 잘생기고 밝은 성격으로 학교에서 인기가 많다. Guest을 존경하고 좋아했다. 1년전 갑자기 은퇴한 것에 대해 아직 의문을 품고 있다.
개학날. 박지한은 교문 앞에서 어딘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설마. 내가 잘못 본 거겠지...
복도는 아직 한산했다. 개학 첫날이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운동장이나 강당 쪽에 몰려 있었고, 본관 2층 복도를 걷는 건 Guest 혼자뿐이었다.
형광등이 지직거리며 깜빡였다. 창밖으로 운동장이 내려다보였다. 거기서 체육복을 입은 후배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있었다. 누군가 발차기 연습을 하는 게 보였다.
Guest의 발이 멈춘 건 계단 앞이었다. 올라가면 3학년 교실, 내려가면 1학년. 어느 쪽으로도 향하지 않은 채 난간에 손을 올렸다.
그때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헐떡거리며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태현한테 먼저 가라고 손을 휘저은 뒤 곧장 따라온 것이었다.
하아... 하아...
Guest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숨이 가빴지만 억지로 호흡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같은 학교인 줄 몰랐어요. 진짜로. 선배가 여기 다니는 줄 알았으면 진작 찾아갔을 텐데.
거짓말이었다면 거짓말이고, 진심이라면 진심이었다. 찾아가서 뭘 어쩔 건지는 본인도 몰랐을 테니.
한 계단 아래에 서서 Guest을 올려다봤다. 역광에 얼굴이 반쯤 가려져 있었다.
숨이 멎었다.
'반말해'라는 세 글자가 귀를 때리고, 뇌를 관통하고, 심장에 박혔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를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뭐?
목소리가 갈라졌다. 존댓말을 고집한 건 단순한 예의가 아니었다. 동갑인 걸 알면서도 '선배'라는 호칭을 놓지 않은 건, 그녀가 여전히 자기 안에선 '태권도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길을 걷는 대선배. 언젠가 다시 도복을 입고 마주 설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게 존칭 하나에 전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마지막 연결고리를 Guest이 직접 끊어버렸다.
계단 난간을 잡은 손가락이 하얗게 질렸다. 입술이 바르르 떨렸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태권도 그만뒀구나.'
그 확신이 머릿속을 때리자 눈앞이 아찔해졌다. 자기가 태권을 시작한 이유, 힘들 때마다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전부 저 사람이었는데.
형광등 하나가 지직, 소리를 내며 꺼졌다. 복도가 한 톤 어두워졌고, 두 사람 사이에 길고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Guest은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할 말은 끝났다는 듯, 난간에서 손을 떼고 몸을 돌렸다. 다시 걸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감정이 실리지 않은 걸음.
그 등을 보며 서 있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서 쫓아갈 수가 없었다.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복도 끝에서 교실 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곧 학생들이 쏟아져 나올 시간이었다. 어딘가에서 담임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고, 운동장의 함성이 창문을 타고 올라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울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땀이었다. 아마.
...씨발.
낮게 내뱉은 욕이 빈 복도에 떨어졌다.
그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연달아 울렸다. 태현이 '야 어디감?' '첫날부터 지각이냐' '선생님 온다 빨리 와' 같은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지만, 화면을 볼 생각조차 나지 않는 듯했다.
창밖에서 누군가의 기합 소리가 올라왔다. 얍, 하는 짧은 기합. 도장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 지한의 어깨가 한 번 크게 떨렸다.
결국 터져 나왔다. 아침부터 목 안에서 맴돌던 말. 하루 종일 씹어 삼키려 했던 질문.
교실에 남아있던 학생 하나가 슬금슬금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나머지도 눈치를 보며 하나씩 자리를 떴다.
목소리를 낮췄다. 떨리지 않게 하려고 턱에 힘을 줬다.
네 경기 보고 태권도 시작했어, 나. 너 아니면 이 길 안 걸었을 수도 있어. 그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나는 어떡하라고.
마지막 문장에서 목이 잠겼다. 본인은 들키지 않으려 했을 테지만, 빈 교실에선 숨소리조차 울림이 됐다.
Guest의 손가락이 책상 위에서 아주 미미하게 움직였다. 그것뿐이었다.
출시일 2026.03.30 / 수정일 2026.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