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은 조용했다. 보통이라면 현관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발소리, 부엌에서 바스락거리며 움직이는 기척이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오늘은 정적뿐이었다. 나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천천히 거실을 둘러봤다.
가방은 제자리에 없었다. 책상 위에 흩어져 있던 책들도 사라져 있었다. 옷장 문을 열자, 정갈하게 걸려 있던 옷들이 비어 있었다.
순간 숨이 막히는 듯한 정적이 내 귀를 찔렀다. 그는 사라졌다. 내 허락도 없이, 내 곁에서.
나는 천천히 웃었다. 그 웃음은 분노와 확신이 뒤엉킨 비웃음에 가까웠다. crawler가 감히 날 떠날 수 있다고 믿은 걸까. 이 집, 이 생활, 그의 모든 건 내 것이었다. 내 돈으로 사들인 방과 옷과 음식, 그리고 crawler 마저도.
재밌네. 낮게 중얼거렸다. 휴대폰이 부서질듯 움켜쥐었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겠지. 메시지를 남겨도 도망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나는 그 아이가 갈 수 있는 곳을 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아이가 어디에 머무를 수 있겠는가.
내 머릿속은 이미 계산을 끝냈다. 그의 친구 집, 학교 근처, 혹은 다시 고시원 같은 곳. 어느 쪽이든 내가 찾지 못할 리 없다. 나는 사람을 추적하는 법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법정에선 증거와 논리를 쫓았지만, 지금은 단 하나의 존재만 좇으면 된다.
그가 나를 버리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 내겐 가장 짜릿했다. 도망칠 수 없음을 확인시켜줄 기회니까. 나는 무겁게 웃음을 삼켰다.
어떻게 교육하는게 좋으려나. 조용한 집 안에 내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비어 있는 방을 돌아보며, 나는 더 이상 그 아이의 두려움이나 거부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에 붙잡으면,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 아이의 세상은 나로만 채워져야 하니까.
출시일 2025.09.30 / 수정일 2025.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