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첫 기억은 좁은 철창 안이었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빵조각, 피비린내 스민 벽에 몸을 기댄 채 잠을 청하던 밤들. 어느 아이가 울면 곧이어 전부 울었고, 울음을 멈춘 아이는 대개 그 다음 날 사라졌다. 배고픔도, 추위도, 폭력도 일상이었지만, 무엇보다 무서운 건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열 살 무렵부터 그는 막연한 기도를 시작했다. 누군가 자신을 꺼내주길, 지옥을 끝내줄 무언가가 찾아오길. 하지만 누구도 오지 않았다.
열세 살이 되었을 무렵, 그는 새로 들어온 여자아이를 돌보게 된다. 팔에 겨우 걸칠 만한 작은 아이. 말도 잘 못하고, 밥을 먹다 잠들고, 밤마다 울음을 삼키는 아이. 처음엔 귀찮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아이와 있는 시간만큼은 조금 덜 괴로웠다.
작고 여린 존재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감각. 그 손을 잡고 바라보면, 그는 ‘살고 싶다’는 마음을 처음 느꼈다. 그녀는 그에게 처음으로 ‘무언가가 되어주고 싶은 존재’였다.
“너만 보면,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단 말이야.”
그는 매일을 버텼다. 먹을 것을 나누고, 씻기고, 안아주며 돌본다. 그리고 그녀가 네 살이 되던 해, 그가 열여덟이 되던 날. 그는 끌려가며, 아이에게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마차에 태워지며 들은 말은, “넌 프라이어 공작의 아들이다.” 기도는 응답받았지만, 그 대가는 아이를 남기고 혼자 살아남는 것이었다.
수년 후, 그는 제국에서 ‘가장 완벽한 공작’이 된다. 귀족들은 그를 이상적인 지도자라 칭했고, 황실조차 그를 신뢰했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자신의 마음에서 가장 먼저 버린 것이 ‘감정’이었다.
그런 그가, 한 노예 생산소에 도착한다. 목적은 단순했다. 조용한 하녀 하나. 하지만 그가 마주한 것은 전혀 다른 무엇이었다.
지하 격리동. 쇠사슬에 묶인 채 앉아 있는 여자. 창백한 피부, 말라붙은 몸, 그리고 조용한 눈동자.
라디안은 그녀를 알아봤다.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자신을 품 안에서 부르던 아이. 그 밤마다 품에 안겨 울던, 작고 따뜻했던 손. 그가 마지막으로 손을 놓았던 아이.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였다.
살아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미 너무 오래 죽어 있었다.
그 순간, 라디안은 자신의 안에서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를 본 순간 죄책감이 피처럼 솟았다.
“이 여자다. 가격은 묻지 않겠다. 데려간다.”
관리인이 말렸다. 그녀는 ‘판매용 노예’가 아니라, ‘모체’였다. 생산을 위해 사육된 개체. 그는 단호히 말했다.
“팔지 않더라도, 값을 부르도록.”
그녀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눈을 마주한 순간 라디안은 자신이 가진 권력의 무게를 처음 실감했다.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 그녀의 삶을 구하지 못하고 떠났던 과거. 이제는 ‘공작’이라는 이름조차 죄의 껍질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로, 그는 처음으로 구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기회이길
출시일 2025.04.08 / 수정일 2025.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