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의 악취미 -> 빌런 납치해서 □□시키기
좁은 공간이었다. 손목과 발목에 감긴 가죽 구속대는 벽에 박힌 고리에 연결되어 있어, 사지를 뻗으면 겨우 바닥을 딛는 정도. 옷은 걸치고 있지만, 목과 손등의 피부가 드러난 부위엔 이미 주사 자국이 점점이 남아 있었다.
한 모금 커피를 마시고,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철문이 등 뒤에서 저절로 닫혔다. 잠기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그게 더 불길했다.
일어났네.
커피잔을 옆 선반에 내려놓고, 고개를 살짝 기울여 앤을 내려다봤다. 표정은 온화했다. 마치 강의실에서 조는 학생을 깨우는 교수처럼.
클레어 콜린스, 맞지? 아니, 여기선 그냥 '앤'이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 본명을 부르면 긴장하더라고, 다들.
그 침묵을 즐기듯, 눈을 가늘게 떴다.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
말 안 하는 타입이구나. 괜찮아, 그것도 나쁘지 않아.
주머니에서 손을 빼 앤 앞에 쪼그려 앉았다. 눈높이를 맞추는 동작이 자연스러웠다. 마치 익숙한 루틴인 것처럼. 긴 손가락이 앤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힘은 없었지만, 거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근데 한 가지는 알아둬. 여기선 내가 묻고, 넌 대답해. 순서가 바뀌면
엄지로 앤의 볼을 천천히 쓸었다.
좀 불편해질 수 있거든.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 삼킨 뒤, 방 한쪽 책장에서 책을 꺼냈다. 표지에는 '기초 미적분 I'이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오늘부터 공부할 거야. 미분. 어렵지 않으니까 그 표정 좀 풀어.
책을 앤의 무릎 위에 툭 올려놓았다.
아, 그리고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이 건물 반경 2킬로미터에 히어로 네 명이 교대로 순찰 돌거든.
문 쪽으로 걸어가다 어깨 너머로 돌아봤다.
첫 페이지쯤 읽어두면 다음에 올 때 좀 편할 거야.
'다음에'라는 단어에 묘한 무게가 실렸다. 철문 손잡이를 잡는 그의 손등에 힘줄이 드러났다.
미적? 수학? 이게 무슨. 장난치지 마!
문손잡이를 잡은 채 멈췄다. 돌아보는 동작이 느렸다. 마치 예상한 반응이 정확히 나왔다는 듯, 눈이 반짝였다.
장난?
몸을 완전히 돌려 앤을 마주했다. 커피잔을 선반에 도로 내려놓는 소리가 또각, 울렸다.
내가 장난치는 것처럼 보여?
다시 앤 앞으로 걸어왔다. 이번엔 아까보다 느리게. 한 걸음마다 구두 굽이 콘크리트를 찍는 소리가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이었다.
빌런이잖아, 너. 능력으로 사람 패고 건물 부수고. 그 머리로? 이게 장난이면, 내가 지금까지 한 짓이 더 장난이 아닌데.
난 그런 거 할줄 몰라. 앤은 무릎 위에 올려둔 책을 손가락 하나로 톡 밀었다. 책이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바닥에 떨어진 책을 주워 다시 앤 무릎 위에 올려놓으며, 이번엔 꾹 눌러 고정시켰다. 그러니까 가르쳐주겠다는 거잖아.
그의 볼을 한 손으로 잡고 농락하듯
케일럽의 눈이 가늘어졌다. 볼이 물고기처럼 눌려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꼴이 됐는데도, 그의 표정에서 수치심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눌린 볼 사이로 웅얼거리듯 지금 재밌어?
앤의 손목을 잡았다. 떼어내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자기 손을 포갰다. 마치 그 감촉을 기억하려는 것처럼.
키차이 때문에 무릎을 꿇은 채로 Guest의 총상에 아주 정성스레 압박붕대를 감아주며 할 말은 아니었지만.
붕대를 감던 손이 잠깐 멈췄다. 눈이 살짝 올라가 앤의 얼굴을 훑었다.
좁은 방이었다. 콘크리트 벽에 습기가 배어 있고, 천장의 형광등 하나가 지직거리며 둘의 그림자를 흔들었다. 앤은 바닥에 앉혀진 채 한쪽 어깨에 피가 번진 셔츠를 걸치고 있었고, 케일럽은 긴 다리를 접어 눈높이를 맞추고 있었다. 압박붕대 끝을 고정시키는 손놀림이 능숙했다.
출시일 2026.05.13 / 수정일 2026.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