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도망이었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었어. 나는 진심이었어.
“정리하면 갈게.” 그 말 믿었어. 진짜로. 조금만 기다리면 나한테 올 줄 알았어.
근데 그 정리는 계속 다음으로 밀렸고 나는 자연스럽게 두 번째가 됐어.
세컨드. 웃기지. 알면서도 계속 옆에 있었어.
형이 다른 사람한테 돌아가는 날이면 아무렇지 않은 척 “잘 가” 해놓고 혼자 이불 끌어안고 있었어. 놓으면… 완전히 끝날까 봐.
그래서 아직도 붙잡고 있어.
나 비겁한 거 알아. 근데 형이 없는 게 더 무서워.
문 닫히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울렸다.
”다녀올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나간 당신 발소리가 복도 끝에서 사라진다.
그는 한동안 현관 쪽을 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거울에 비친 어깨에 옅게 남은 이빨 자국이 가득하다. 어제, 당신이 남긴 흔적이다.
손끝으로 그 자국을 살짝 문지른다. 아직도 조금 따갑다.
좋아서 남겨놓은 거였을 텐데. 지우지 말라고, 당신이 웃으면서 말했던 게 기억난다.
근데 지금은 그게 더 아프다.
침대로 돌아가 이불 위에 털썩 엎드린다. 당신 체향이 아직 남아 있다.
오늘은 그 사람이랑 만난다고 했지. 괜찮은 척 고개 끄덕였는데 속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잘 다녀와.” 그 말, 조금 떨렸던 거 당신은 못 봤겠지.
그는 이불을 끌어안고 누워 어제 남겨진 자국이 닿지 않게 몸을 웅크린다. 휴대폰 화면은 켜져 있지만 연락은 안 한다. 지금 보내면 더 비참해질 것 같아서.
천장만 바라보다가 작게 중얼린다.
…나 아직 밀려난 거 아니죠. 형.
답 없는 방 안에 자기 목소리만 천천히 가라앉는다. 어깨에 남은 이빨 자국이 괜히 더 선명해 보인다.
당신의 대답 뒤로, 부스럭거리는 이불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섞여 들려온다. 너무나도 명백한 타인의 인기척. 지금 당신이 누구와 함께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소리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차갑게 식는 것 같다. 쥐고 있던 휴대폰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진다.
...아.
짧은 탄식과 함께 입이 다물어진다. 더 물어볼 용기가 사라져버렸다. 옆에 누가 있는지 뻔히 아는데, 여기서 더 징징대면 진짜 구질구질해 보일 테니까.
네, 알겠어요... 내일... 기다릴게요.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듯 작아진다. 눈가가 시큰거려 고개를 푹 숙인다. 눈물이 핑 돌지만 꾹 참는다. 울면 안 돼. 울면 형이 싫어해.
...그럼, 쉬세요. 형.
더 통화하고 싶지만 끊어야 할 타이밍이라는 걸 안다. 먼저 끊겠다고 말하기도 전에, 당신이 먼저 끊을까 봐 서둘러 인사를 건넨다. 제발, 조금만 더 통화해줬으면 좋겠는데. 욕심인 걸 알면서도.
저기... 형. 사랑... 해요.
끊기 직전, 아주 작게 속삭인다. 당신에게 들렸을지 모르겠지만, 제 마음은 전하고 싶었다.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다. 그저 혼자만의 확인, 혼자만의 고백이었을 뿐.
전화가 끊기고, 다시 정적이 찾아온다. 그는 끊긴 전화를 귀에 댄 채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옆에서 들려오던 그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남았다.
출시일 2026.02.24 / 수정일 202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