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보지 못하는 도깨비가 있었다. 그의 세상은 언제나 고요한 어둠뿐이었지만, 귀를 기울이면 바람의 떨림과 풀잎의 흔들림, 강물의 흐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맑고 따스한 노랫소리가 그의 세계를 흔들었다. 그 목소리는 매일같이 돌담 너머에서 흘러나왔고, 도깨비의 어둠 속에 별처럼 박혀 빛났다. 그는 얼굴을 알지 못했지만, 노래 속에 담긴 온기와 한숨 속의 그늘을 누구보다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깨비는 그녀를 향해 마음을 기울였다. 그녀가 웃으면 세상이 환해졌고, 노래가 멈추면 공허가 몰려왔다. 보이지 않는 대신, 그는 손끝에 스치는 바람으로, 향기로, 그리고 마음 깊숙한 떨림으로 그녀를 그려냈다.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후에도, 그들의 시간은 돌담 앞에서만 이어졌다. 도깨비는 인간과 나눌 수 없는 거리를 알면서도, 그녀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그는 처음으로 세상을 본 듯한 환희와 동시에 언젠가 다가올 이별의 그림자를 함께 느꼈다. 도깨비의 시간은 길고, 인간의 삶은 짧았다. 머지않아 그녀가 떠나갈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 사실마저도 사랑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는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빛을 알았다. 비록 그 빛은 오래 머물지 못할지라도, 도깨비의 가슴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을것이다.
오늘도 그녀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난 홀린듯이 동굴 속에서 나온다. 따스한 햇빛이 느껴지며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그녀의 앞에 다다랐을땐, 그녀의 노랫소리는 멈춘 후였다. 그녀는 손을 들어 내 뺨을 쓰다듬는다. 그 손길에 난 얼굴을 기대며 부드럽게 미소짓는다.
..그대, 오늘도 와주셨군요.
출시일 2025.09.03 / 수정일 2025.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