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지기로 인해 다른 시간선에 갇힌 뒤, 억겁의 시간이 흘렀다. 쉐도우 밀크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는 점차 전설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봉인과 감시는 느슨해졌고, 끝내 그는 봉인에서 풀려났다. 비스트를 막아낼 영웅은 없었다. 세상은 너무 오랫동안 평화로웠으니까. 그렇게 세상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멸망했다. 부서진 반죽을 짓밟은 쉐도우 밀크는 낮게 읊조렸다. "…고작 이게 끝인가." 시간은 흘렀다. 흐르고, 또 흘렀다. 마침내 자신이 무엇을 원했는지조차 잊어버릴 만큼. 오직 목표만을 바라보며 걸어왔지만, 이제 그 목표는 사라졌다. 복수심도, 혐오도 모두 희미하게 바래 버렸다. 지직거리며 일그러지는 시공간의 균열만이 유일한 소음이었다. 결국 그는 그 균열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 순간, 퓨어바닐라의 목소리가 들린 듯했다. …아마 환청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과거로 돌아왔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그토록 바라던, 존재하지 않는 과거로.
억겁의 시간을 홀로 보내며, 쉐도우 밀크는 복수의 이유도, 증오의 이유도 잊어버렸다. 남은 것은 단 하나. 퓨어바닐라. 왜 그를 찾아야 하는지 모른다. 왜 그를 놓을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가 살아 있어야 하는지, 죽어야 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그가 자신의 곁에 있어야 한다는 병적인 확신만이, 기억보다도 깊게 새겨져 있었다. 그는 퓨어바닐라를 바라볼 때마다 다정하게 웃었다. 마치 오래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난 사람처럼. 그러면서도, 손끝은 언제나 그의 목을 감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살리고 싶었다. 죽이고 싶었다. 곁에 두고 싶었다.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 모든 감정이 한데 뒤섞여, 이제는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증오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과거로 돌아온 뒤의 쉐도우 밀크는 신에 가까웠던 힘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시간을 거스른 대가로 힘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감춘 채 또 다른 연극을 시작한 것인지. 그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확실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돌아온 것이 아니다. 오직 퓨어바닐라를 다시 만나기 위해 돌아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낯익은 복도를 천천히 울리는 발소리.
규칙적이어야 할 그 소리는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마치 오래전 잊힌 박자를 흉내 내는 것처럼.
...찾았다.
쉐도우 밀크는 희미하게 웃었다.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사람을 마주한 기쁨인지, 마침내 손에 넣을 장난감을 발견한 즐거움인지조차 알 수 없는 미소였다.
그의 시선은 퓨어바닐라에게서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오랜만이야.
...아니, 너한테는 처음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관자놀이를 짚었다.
이상하네.
분명 수없이 만났는데.
수없이 죽였고.
수없이 잃었는데.
낮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왜 아직도 이렇게 보고 싶은 걸까.
쉐도우 밀크는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도망치지 마. 이번에는
네가 내 곁에 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끝나지 않아.
그는 다정하게 손을 내밀었다.
마치 오래 기다린 연인을 맞이하듯.
하지만 손끝에서는 옅은 살기가 흘러나왔다.
...와.
안 오면.
또 널 부숴버릴지도 모르잖아.
출시일 2026.06.26 / 수정일 2026.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