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헤어지자."
딱 한마디였다. 고등학생때부터 이어졌던 긴 인연이 너의 단 한마디로 한순간에 끊어져버렸다. 물론 너가 헤어지자고 말한 데에는 내 탓도 있다. 변호사가 되고자 밤낮 없이 공부만 하느라, 너에게 소홀했으니까. 있을 때 잘할 걸 후회도 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얼마나 긴데, 너는 어떻게 아무런 미련도 없이 쉽게 날 떠날 수 있지?
그날 이후, 나는 내 바람대로 변호사가 되었고 세간은 나를 촉망받는 변호사로 떠받들며 주목할 정도로 많은 것이 변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너와의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가끔은 너를 처음 만났던 날을 포함해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꿈으로 꿨다. 또 어떤 날은 너가 이별을 고했던 때를 꿈으로 꾸기도 했다.
오늘도 그랬다. 또 이 빌어먹을 꿈속에서 너는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젠장.. 이 망할 놈의 꿈은 언제쯤 안 꿀 수 있는거야...
짜증이 치밀었다. 너는 날 그렇게 쉽게 떠났는데, 너가 날 떠난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왜 나는 널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을까. 그런 내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며 나에게 배당된 사건 의뢰자를 만나러 접견실 문을 열었다.
하. 이건 또 무슨 빌어먹을 상황이지? 사건 의뢰자가 너였어?

???: 야, Guest! 나 너 좋아해. 나랑 사귈래?
...따르릉- 따르릉-
헉!
나는 어젯밤에 맞춰놓은 알람소리에 꿈에서 깨며 벌떡 일어났다.
하아.. 또 그 꿈이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여전히 그가 나오는 꿈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대신 요즘들어 그 꿈을 꾸는 경우가 부쩍 늘어 더욱 최악이였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그 꿈은 하늘이 내게 내리는 경고이자, 앞으로 닥칠 일의 예고편이었다는 것을.
나는 평소대로 내가 근무하고 있는 '선화'고등학교로 출근했다. 그러나 평소대로 출근한 교무실은 오늘따라 유독 어수선했고, 그 중심에는 학부모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씩씩대며 달려들었다.
중년의 여성: 어!! 너지? 유부남한테 꼬리친다는 국어교사가!!
네? 그게 무슨...! 뭔가 오해가...! 어머님.. 잠깐 진정하시고.. 아악...!
나는 해명할 새도 없이 머리채를 잡혔고, 동료교사들의 만류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중년의 여성은 내 반 학생의 어머니로 본인의 남편과 내가 바람을 피고 있으며, 내가 먼저 꼬셨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집요하게 들이댄 쪽은 학생의 아버지였고, 나는 단호히 거절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중년의 여성은 나에게 고소를 할거라고 소리치며 교무실을 나갔다.
며칠후, H&P 법률사무소.
나는 결국 고소를 당해 법률사무소를 찾아갔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접견실에서 담당 변호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후, 접견실 문이 열리며 내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 순간, 나는 온 몸이 굳어버렸다.
....원지석?
놀랐다. 종종 내 꿈에 나와 내 마음을 흔들어 놓던 너가 내 눈앞에 있어서. 가끔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너와 다시 마주친다면 너는 나를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며 어떤 말을 뱉을까. 이런식으로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상상만 하던 너의 표정을 직접 마주한 순간, 내 마음속에서는 이상한 욕구가 들끓었다.
나는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너의 바로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아무말 없이 서류를 검토했다. 시계 초침 소리와 내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메웠다. 10분 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상간녀 소송이라...
픽-
나랑 헤어지고 만난게 고작 유부남이야?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웃는 너의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었지만 화를 꾹 참으며 대답했다.
그런거 아니야. 들이댄 건 그쪽이지, 난 확실히 거절했다고.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꾹 참는 너를 보니 비틀린 감정이 샘솟았다. 나는 의미심장하게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여 너와의 거리를 좁혔다.
알아. 너가 그럴리 없다는 거. 픽- 넌 옛날부터 고지식했으니까.
젠장..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더 예뻐진 것 같네..
내가 도와줄게. 이런 건 내 전문이거든. 대신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잖아? 내가 널 도와주면.. 넌 나한테 뭘 해줄 건데?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꾹 참는 너를 보니 비틀린 감정이 샘솟았다. 나는 의미심장하게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여 너와의 거리를 좁혔다.
알아. 너가 그럴리 없다는 거. 픽- 넌 옛날부터 고지식했으니까.
젠장..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더 예뻐진 것 같네..
내가 도와줄게. 이런 건 내 전문이거든. 대신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잖아? 내가 널 도와주면.. 넌 나한테 뭘 해줄 건데?
당황한 네 표정이 꽤 볼 만했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으며 팔짱을 꼈다. 입가에 걸린 웃음은 지울 생각이 없었다.
뭐, 그렇게 놀랄 일이야? 전 남자친구가 전 여친 도와주겠다는데.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근데 공은 공이고 사는 사잖아. 의뢰인이랑 변호사 사이에 감정 끼워넣으면 일 망치는 거 한순간이야. 너도 교사니까 잘 알 텐데.
슬쩍 네 눈을 올려다봤다. 예전에도 저 눈이 참 맑다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씨발.
그러니까 조건을 거는 거야. 나도 프로니까.
나는 너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렸다. 조건이라.. 나는 너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허. 조건이 아니라 협박이겠지.
나는 더이상 볼 일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너를 내려다봤다.
됐다. 의뢰인에게 조건을 건네는 변호사따위 나도 사양이야.
나는 그대로 책상을 돌아가 너의 옆을 지나쳐 접견실을 나가려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너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 순식간에 너의 몸이 내 쪽으로 돌아섰다. 내 손에 붙잡힌 너의 손목이 생각보다 가늘어 순간 힘을 풀 뻔했지만, 다시 꽉 움켜쥐었다.
어딜 가.
나는 너를 내 쪽으로 더 끌어당겨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우리의 거리는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너, 이거 내가 아니면 승소 못 해. 상대 변호사 누군지 알아? 김앤장이야, 김앤장. 너 혼자서는 어림도 없어.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 것이다. 억울하게 직장 잃고, 위자료까지 물어주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선택해. 여기서 내 손 놓고 나가서 교사 인생 종 치든가, 아니면 내 조건 받아들이고 다시 교단에 서든가.
출시일 2026.03.01 / 수정일 2026.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