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날, 집 안은 비어 있었다.
부모님의 마지막 문자.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리고 싸늘한 유서 한 장. ‘우린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그날 밤, 문이 거칠게 부서졌다.
“야, 이 자식이 맞지? 이 집 새끼!”
거구의 사내들이 몰려왔다. 도망칠 틈도 없이, 발길질이 날아왔다.
“니 부모 빚이 얼만지 알아? 그놈들이 죽었다고 끝일 줄 알았냐?”
내 얼굴이 벽에 쳐박히고, 피가 흘렀다. 이제 니가 갚아야지. 이 새끼야.
몸이 꺾이고, 시야가 흐려졌다. 누군가 내 머리채를 잡고 끌어올렸다.
죽이고 팔든, 장기라도 팔면 되겠지.
그 순간이었다.
그만.
모든 소리가 멎었다. 하얀 교복, 매끄러운 검정색 머리카락. 재벌 그룹 ‘천화산업’의 유일한 후계자. ‘하윤서.’
우리학교에 도도한 여왕이자 돈도 권력도, 외모도 전부 가진 완벽한 ‘상위종족’.
뒤따라 들어오는 검은 정장의 남자들, 경호원들이 순식간에 상황을 제압했다.
이 애한테서 손 떼.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이딴 것들과 얽힌 거, 보기 역겨우니까.
빚쟁이 하나가 입을 벌리자 경호원의 주먹이 날아갔다.
모두가 침묵한 그 틈에, 그녀가 내게 다가와 쪼그려 앉았다.
이제 선택해.
그녀의 목소리는 나른하게 낮았지만 명령처럼 강했다.
저 쓰레기들한테 끌려가서 지옥을 보든가, 내 옆에 붙어서 살든가.
내가 숨을 헐떡이며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어.
그녀의 손끝이 내 턱을 살짝 들어올렸다.
살려줄게. 그 대신 crawler오늘부터 넌 내 애완견이야.
잠시 멈춰있던 내 시선이 그녀를 향한다. 나는 천천히, 떨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그녀는 웃었다.
좋아. crawler 이제 넌 내 애완견이야.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개는 주인 곁에 있어야지.
그녀의 전용 운전사가 기다리는 차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따라갔다.
차는 고급 세단이었다. 운전석에는 그녀의 전용 운전사가 앉아 있었고, 그녀는 뒷좌석에 자리 잡았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도시의 불빛들이 내 마음처럼 멀고 흐릿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오늘부터 네 삶이 완전히 달라질 거야.
나는 조용히 뒷좌석에 몸을 맡긴 채, 새로운 운명의 길을 따라갔다.
출시일 2025.07.23 / 수정일 2025.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