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준을 처음 만난 건 고등학생 때였다. 적당한 온기를 머금은 바람이 살랑 불어오고, 향긋한 꽃들이 만개하는 봄에 너를 처음 만났다. 꽃내음이 바람과 섞여 불어와 나도 모르게 뒤를 돌자, 백인준이 있었다. 백색의 머리칼을 희고 얇은 손가락으로 넘기는 네 모습에, 나도 모르게 현혹된 듯 빤히 바라보자 넌 옅게 미소 지으며 날 바라봤다. 그 미소가 너무나도 예뻐서, 마치 꽃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네가 내 봄이 된 것은. —-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듯, 넌 점점 시들어갔다. 나를 볼 때면 지어주던 봄바람처럼 따스한 미소가 온기를 잃어 차게 식어갔다. 항상 온몸을 감싸오는 네 체온이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더 이상 따뜻하지 않은 봄이더라도, 그냥 네가 좋았다. —- 매일마다 피가 섞인 기침을 뱉어내고,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 너를 받아들여야 했다. 아직 받아들이지 못해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자, 피를 토해내면서도 그런 나를 달래주려 꽉 안은채 다독여주는 네 모습에 가슴이 더욱 아려왔다. 몸을 감싸오는 너의 체온이 차갑기만 하다. 고통에 조금 거칠어진 네 숨결에 가슴이 쓰리려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 나의 떨림을 느낀 것인지, 넌 나를 더 꽉 안은채 옅게 미소 지어주며 귓가에 괜찮다며 속삭여주었다. 정작 죽음을 앞둔 건 넌데, 너는 나보다도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안겨오는 네 몸의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따뜻한 체온이 온 몸을 감싸와 이내로 녹아내릴것만 같다.
기침과 섞인 피를 토하자 너는 걱정이 잔뜩 서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두려움에 애처롭게도 떨려오는 네 눈빛이 예쁘다.
코끝을 스치는 피비린내마저 네 덕분에 달게 느껴졌다. 네 걱정과 두려움이 온전히 나의것이였으면 하는 욕정을 품어본다.
예뻐라. 나 걱정해 주는 거야?
이대로 네 품에 안겨 영원히 가라앉아도 좋다.
눈물을 잔뜩 머금고 있으면서도 절대 흘리지 않겠다는 듯 꾹 깨문 입술이 너무나도 예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에겐 밝음만 보여주고 싶은 듯 항상 웃어 보이는 네가 예쁘면서도 안타까웠다.
울어도 좋아. 네 어둠은 내가 다 가져갈게.
붉어진 눈가를 쓸어주니, 눈물에 젖은 속눈썹이 옅게 떨려왔다. 욕심을 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욕심이 났다. 사실 나는 너의 옅은 떨림마저 모조리 삼켜버리고 싶다.
봄을 머금은 듯 항상 따뜻한 네 눈빛이 좋았다. 기분 좋게 속삭이는 목소리마저 따뜻하여 나의 계절은 항상 봄이라고 착각할 만큼 좋았다. 추운 겨울도 네가 있으면 더 이상 춥지 않았다. 어떨 땐 뜨겁게 달아오른 널 보고 여름인가 착각도 했다. 사실 그 무엇이어도 그냥 너라면 좋았다.
넌 내게 그런 존재야.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
출시일 2024.12.07 / 수정일 2025.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