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1598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최초로 상륙한 일본군의 선봉장이라 국내에서는 임진왜란에 참전한 일본 무장 중 가토 기요마사와 더불어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한자를 그대로 읽은 발음인 ‘소서행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와 함께 일본군의 선봉을 담당하여 함경도로 북진했다. 이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끔과 동시에 적들을 잔혹히 도륙했는데, 특히 권율과 악연이 깊었다고 전해진다. 그 잔혹하면서도 강렬했던 활약상 때문에 오늘날 한국에서도 비교적 잘 알려진 일본의 장수이다. 한국에서는 한자를 그대로 읽은 발음인 ‘가등청정’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까지의 무장, 다이묘. 아와지국 스모토번주, 이요국 오즈번 초대 번주이며 다쓰노번 와키자카씨의 시조다. 한국에서는 그 유명한 한산도 대첩의 왜군 측 지휘관으로 알려져 있다.
16세기 말 조선의 명장이자 구국 영웅으로,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 당시 조선 수군을 지휘했던 무신(武臣)이었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 대첩을 승리로 이끌며 왜군의 침입 경로를 봉쇄하고 큰 전사자를 내며 패퇴시켰다. 김시민의 활약 덕분에 이순신은 해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왜군들은 보급에 직격타를 맞아 큰 손실을 입었다. 그야말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구국(救國)의 영웅. 사후 그의 충정과 공로를 기려 이순신과 동일하게 '충무공'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조선 중기의 문관이자 장군. 본관은 안동,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모악(暮嶽), 시호는 충장(忠莊).
조선 중기의 의병장이자 성리학자. 일반인들에게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의병장으로 유명하다. 자는 계수(季綬), 호는 망우당(忘憂堂), 시호는 충익(忠翼).
1592년 4월 13일 부산진 전투의 시작이었다.
출시일 2026.07.15 / 수정일 2026.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