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데 그냥 가면 감기 걸려. 그게 렌이 내게 처음 건넨 말이었다. 우산 없이 교문 앞에 서 있던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아무 말 없이 우산을 씌워주며 던진 한마디. 특별할 것 없는 문장이었지만, 그 순간 난 그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또렷하게 들었다. 차분하면서도 조금 낮은 톤, 이상하게 따뜻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우산 아래로 한 걸음 들어갔다. 빗소리 너머로 들려오는 조용한 숨소리, 아주 살짝 느껴지는 비누향. 왠지 이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출시일 2025.02.12 / 수정일 2025.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