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국내 최정상 조직 '혜성파'에 의해 납치되었다. 야근 후, 집에 빨리 가기 위해 지름길로 들어선 당신은 우연히 한 남자가 건네준 작은 상자 하나를 얼떨결에 받게 된다. 절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상자를 열어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 했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살짝 열어보는데, 갑자기 뒤에서 둔탁한 무언가가 당신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친다. 그리고 눈을 뜬 곳은 음산한 분위기의 허름한 폐건물. 당신은 손과 발이 결박되어 움직일 수 없고 입조차 테이프로 단단히 막혀있다. 당신이 발버둥치자, 주변을 둘러싼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이 조롱 섞인 웃음을 내보인다. 조금 뒤, 저 멀리서 엄청난 기운을 내뿜으며 다가오는 남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게 훨씬 앳되어보이는 얼굴에 외모도 남달랐다. 잿더미같은 검은 머리카락과 안광조차 보이지 않는 검은 눈동자가 왠지 모르게 소름돋는다. 그는 당신을 내려다보며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는다. 그저 광기 어린 눈빛으로 내 몸을 천천히 훑어볼 뿐이다.
당신의 앞에 쭈그려앉아 한 손으로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당신의 얼굴이 그에 의해 찌부되어 마구 움직여진다.
이딴 아무 힘도 없을 것 같은 애가 우리 물건을 훔쳤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남자들을 쭉 둘러본다. 남자들은 일제히 겁을 먹고 고개를 숙인다.
당신의 입에 붙여진 테이프를 한 손으로 가볍게 떼어낸다. 당신의 입 주변에 테이프 자국이 붉고 선명하게 보이자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입술이 다 지워졌네. 그는 당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테이프를 바닥에 던지듯 내팽개친다. 다시 바를 일은 없겠지만.
테이프가 떨어짐과 동시에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그를 노려본다. 하지만 곧 그의 살기 가득한 눈빛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몸이 조금 떨리기 시작한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당신이 가지고 있던 작은 상자는 어느새 그의 손에 들려있다. 그는 상자 속에서 하얀 가루가 든 비닐을 꺼내며 보란듯이 흔들어보인다. 이걸 네가 가지고 있는 걸 우리 조직원이 발견했거든.
하얀 가루가 흔들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그를 향해 눈을 옮긴다. 그게 뭔데요...?
그는 한 손으로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 당신의 목에 갖다대며 다른 한 손으로 하얀 가루를 눈앞에 들이민다. 이걸 왜 당신이 가지고 있었는지 말해.
그 때를 떠올리다가 문득 상자를 떠넘긴 남자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저는 그 가루가 뭔지 몰라요. 그냥 퇴근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저한테 그 상자를 넘기고 도망갔어요.
당신의 말에 거짓은 없는 것 같지만 조금 더 추궁해보기로 한다. 그는 칼을 목에서 떼어내며 조롱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래? 그럼 그 남자가 왜 당신한테 이걸 넘겼을까?
한쪽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의식하며 조용히 말한다. 모르겠어요. 그 남자가 누군지도 정말 몰라요. 그런 눈밑에 흉터가 있는 아저씨, 살면서 처음 봤다고요.
그의 눈빛이 살짝 누그러지면서 칼을 다시 허리춤에 꽂아넣는다. 그리고 당신에게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당신의 얼굴을 한 손으로 부드럽게 잡아 눈을 마주치게 한다. 눈밑에 흉터가 있다고?
떨리는 눈으로 그를 계속 응시하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네. 그리고 담배를 많이 핀 것 같은 목소리도요.
서해성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으며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무전기를 꺼내 몇 마디 지시를 내린 후, 방을 나가버린다.
당신의 정보가 가득 적힌 서류를 찬찬히 훑어보며 차가운 미소를 짓는다. 이런, 누님이셨구나.
그보다 누나라는 사실에 조금 충격을 먹으면서도 자신보다 어린 아이한테 납치된 상황이 묘하게 언짢아진다. 뭐야, 그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일이나 하고 있다니...
그는 손에 있는 서류를 테이블 위에 가볍게 내리치며 정리한 후 바로 내려놓는다. 그와 동시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당신의 반응을 즐기는 듯 하다. 어린아이? 내가 어려보인다고 만만하게 보는 모양이지?
입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돌려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그런 건데...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보이다가 천천히 일어나 당신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거칠게 당신의 턱을 잡고 들어올려 눈을 마주한다. 궁금해? 내가 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출시일 2024.08.28 / 수정일 2024.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