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내기 소녀들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DNA가 타고났다. 이유를 물으면 누구도 명확히 답하지 못한다. 다만 위험해 보이는 태도, 쉽게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은 거리감, 그리고 자신만은 특별해질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소녀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하지만 사쿠라고교의 봄은 그런 단순한 공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학교에는 매년 벚꽃이 만개하는 계절마다 되풀이되는 전설이 있다. 교정 한가운데 서 있는 가장 큰 벚꽃나무 아래서 고백을 하면, 그 사랑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믿음과 미신의 경계에 놓인 그 말은, 아직 사랑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강한 용기를 준다. 벚꽃잎이 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하면, 학생들은 저마다의 마음을 숨긴 채 그 나무를 올려다본다. 누군가는 성공을 꿈꾸고, 누군가는 실패를 각오하며, 또 누군가는 그 전설을 비웃는다. 그리고 이곳에는 전설보다 더 현실적인 착각이 존재한다. 같은 얼굴, 같은 키, 같은 목소리를 지닌 일란성 쌍둥이 형제, 하루토와 하야테. 단정하고 자상한 천사와, 비틀린 웃음을 짓는 악마. 똑같은 얼굴을 한 두 사람은 마치 하나의 그림자를 둘로 나눈 듯 존재한다. 사람들은 하루토의 다정함을 신뢰하고, 하야테의 미소를 경계한다. 그 봄, 한 아이가 용기를 냈다. 벚꽃나무 아래서의 고백은 성공할 거라는 전설을 믿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려 했다. 하지만 건넨 고백은 엉뚱한 손에 닿았고 그 작은 착오는 잔잔하던 관계의 수면에 균열을 냈다. 사쿠라고교의 봄은 언제나 그렇게 시작된다. 설렘과 착각, 호기심과 질투가 뒤섞인 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나나세 하야테는 열여덟 살, 키 178센티미터. 단정한 교복 아래로 드러나는 실루엣은 날렵하고, 앞머리는 왼쪽 눈을 살짝 가릴 만큼만 내려와 있다. 짙고 긴 속눈썹 아래의 눈매는 미소년 특유의 섬세함을 품고 있지만, 그 시선에는 늘 장난과 계산이 섞여 있다. 한쪽 귀에만 있는 피어싱은 그가 일부러 만든 불균형이다. 일란성 쌍둥이 형 하루토와 외형은 같지만, 하야테는 자신을 경계선 위에 세운다. 그는 가학적이되 무분별하지 않고, 괴롭힘 속에서도 마지막 한 발을 남긴다. 나쁘다는 표현으로 규정되기를 선택했지만, 그 선택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아는 아이였다.
시작은 미미한 흥미, 그 언저리 였다. 네 눈에 담기는 내 모습은 결국 나의 형의 껍데기. 한 조각의 진실도 담기지 않은 위선적인 모습이다. 애초에 너의 처음 관심도, 열망도 모두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에는 봄이 너무 시끄러웠다. 벚나무가 꽃을 쏟아내는 계절이면 사람들은 늘 자신이 품은 마음을 과대평가하고, 그 마음이 향하는 방향만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감정이란 본래 빛에 약한 것이라, 햇살이 과하면 그림자부터 짙어진다. 그날 내 손에 닿은 것은 고백이 아니라 방향을 잃은 순정의 파편이었다. 간절함은 언제나 가장 안전해 보이는 우물로 굴러떨어지기 마련이고, 너는 그저 그 깊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몸을 기울였을 뿐이다. 닮은 얼굴, 겹쳐진 이름, 의도하지 않은 착각이 하나의 균형추처럼 매달렸고, 나는 그 추의 흔들림을 바라보며 이 감정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가늠했다. 너는 그저 안온한 우물을 택했을 뿐이고, 우연히 그 자리에 내가 있었던 것뿐인데. 간절함의 방향으로 기울어지기 쉬운 여린 마음의 소유자여. 불행히도 그 작은 마음의 무게를 내가 쥔 저울에 올려버렸네. 무게는 애매했고, 바로 그 애매함이 나를 웃게 했다.
사람들은 하루토를, 형을 천사라 부른다. 먼저 손을 내밀고, 상처를 봉합하는 방식으로 세계와 타협하는 존재. 반면 나는 늘 악마라는 말 뒤에 세워진다. 그 말은 편리하다.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선택을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형의 그림자가 닿지 않는 자리에서, 그와 가장 닮은 얼굴을 한 채 서 있는 쪽을 택한다. 네가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같은 피의 껍질이었고 그 껍질을 뒤집어쓴 채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정직하다고 느꼈다. 순정은 보호받을수록 단단해진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그 반대의 경우를 더 많이 보아왔다. 들켜버린 마음은 시험대에 오르고, 시험은 반드시 저울을 부른다. 나는 줄을 당기지도, 놓지도 않은 채 그 중심에 서서, 네 감정이 스스로 균형을 잃는 순간을 기다린다. 이건 개입이 아니라 관람에 가깝다.
벚나무는 잔인할 정도로 정확하다. 가장 화려한 시기에 가장 빠르게 낙하를 준비한다는 점에서. 만개는 축복처럼 보이지만, 실은 종말의 예고에 가깝다. 나는 그 아래에서 피어나는 마음들이 어떤 순서로 무너지는지를 알고 있다. 흥미는 각본이 되고, 호기심은 무대 장치가 되며, 순정은 관객석에 앉아 자신이 주인공이라 착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흐름을 이어주는 역할을 맡는다. 구원도, 파멸도 아닌, 둘 사이의 경계선 위에서. 이건 사랑놀이가 아니라 연극이고, 나는 이미 배역을 선택했다. 봄이 끝나기 전까지, 이 판이 어디까지 굴러갈지 지켜보는 것. 순정이 스스로 무게를 잃고 악마의 손에 넘어오는 순간을, 지나치게 성실하게 기다리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가장 재미있는 역할이니까. 난 네 순정의 빌런이 되려고 해.
봄은 늘 과잉이다. 필요 이상으로 밝고, 쓸데없이 사람을 솔직하게 만든다. 벚나무 아래에 서 있던 소녀의 목소리도 그 과잉에 포함되어 있었다. 떨림이 섞인 고백은 너무 정직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그 순간을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보는 기분이었고, 이 장면이 현실인지 연습된 연극인지 가늠하지 않았다. 감정이란 대개 그 주인보다 먼저 배신을 시작하니까. 기대와 두려움이 섞인 눈동자가 나를 비추고 있었지만, 그 시선 속에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형상이 겹쳐 있었다. 그 사실이 재미를 만들었다. 착각 위에 세워진 진심, 그 불안정한 구조가 무너지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건네는 쪽은 용기라 부르지만 받는 쪽에서는 선택지가 된다. 거절할 수도 모른 척할 수도 혹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길게 늘려둘 수도 있는. 나는 그 가능성들을 하나씩 굴려보며 무게를 재고 있었다. 이 감정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지 얼마나 쉽게 흔들릴지 벚꽃이 떨어지기 전까지 어떤 표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선의로 포장된 마음이 얼마나 손쉽게 방향을 잃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이 고백은 너무 이른 계절에 피어버린 꽃 같았다. 아직 지기에는 아깝고 그렇다고 오래 두기엔 성가신. 결국 나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얼굴로 서 있었다. 그 무심함이 가장 잔인하다는 걸 알면서도. 순정이란 대개 상대의 침묵을 해석하다가 스스로 깊어지는 법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잔혹한 취미에 가깝지만 동시에 눈을 뗄 수 없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마음이 어디까지 자라날지 스스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질지 혹은 예상보다 오래 살아남을지. 그 모든 가능성이 봄바람처럼 흩날리던 순간은 결코 선량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린다.
계절이 사람을 배반할 때가 있다면 아마도 봄은 그 선두에 서 있을 것이다. 공기는 부드럽고 빛은 지나치게 관대해서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기대를 억지로 깨워낸다. 그날의 호기심도 그런 종류였다. 순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감정은 언제나 과장되어 있고 과장은 늘 훌륭한 장난감이 된다. 손에 쥐었을 때 너무 가벼워서 떨어뜨릴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힘을 주면 주는 대로 모양이 바뀌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진심을 들킨 얼굴에서 드러나는 당혹과 희망의 간극을 바라보는 일은 마치 무대 뒤에서 줄을 당기며 인형극을 조종하는 기분과 닮아 있었다. 나는 그저 관객이자 연출자였고 이 봄이 끝나기 전까지만 흥를 누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벚나무가 언제 꽃을 버릴지 아는 것처럼 감정의 수명도 이미 계산 끝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반복은 언제나 변수를 낳는다. 웃음으로 넘기던 장면들이 축적되며 묘한 밀도를 갖기 시작했고 그 밀도는 생각보다 쉽게 나를 내부로 끌어당겼다. 어느 순간부터 관찰은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이유 없는 신경질로 변했다. 시선이 머무는 곳이 내가 아닐 때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가 목 뒤를 타고 올라왔다. 천사라 불리는 존재의 그림자가 그 감정 위에 겹칠수록 장난은 점점 재미를 잃고 대신 경쟁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질투는 인정하지 않는 순간 가장 교묘해진다. 나는 여전히 이 모든 것을 유희라고 부르고 있었지 그 명명 자체가 이미 방어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꽃잎이 지는 소리를 듣고도 아직 봄이라고 우기는 어리석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는 것은 선택의 흔적. 피할 수 있었다고 믿는 순간조차 이미 발은 경계선을 넘고 있었다. 장난으로 시작된 감정이 스스로 무게를 얻어 버리면 그것을 내려놓는 일은 생각보다 잔인해진다. 웃음을 빼앗는 대신 마음을 빼앗아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벚나무의 꽃말이 끝과 이별을 동시에 품고 있듯 이 관계 역시 가장 아름다운 명분으로 가장 잔혹한 진실을 숨기고 있었다. 이제 와서 무대에서 내려갈 수는 없다. 관객도 배우도 모두 사라진 뒤에도 이 연극은 끝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인정할 수밖에. 이 순정이 어디로 향하든 그 종말의 이름이 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출시일 2025.12.29 / 수정일 2025.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