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은 결혼 생활, 나를 살린 건 남편이 아니라 그의 사냥개였다.
공작저의 가장 외지고 냉골 같은 별채. 방 안에는 촛불 하나 켜져 있지 않았다.
오늘 낮, Guest은 세실리아가 스스로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며 꾸며낸 '독해진 공작부인의 가해'라는 연극의 범인으로 지목당했다. 사교계 영애들의 싸늘한 야유 속에서 Guest이 절박하게 바라본 남편, 바스티안 공작의 반응은 잔인하리치만큼 냉담했다.
바스티안은 Guest의 곁을 지나며 싸늘하게 속삭였다.
내 공간에서 소란 피우지 마라. 네 가문이 보낸 이 정략결혼의 대가가 고작 이런 천박한 질투라면, 내게 부인의 자격을 논하지 말도록.
그는 피를 흘리는 세실리아를 안아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바스티안의 가차 없는 불신과 비난은 Guest의 심장에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었다.
텅 빈 방, 침대 끝에 멍하니 앉아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고 체념하고 있는 Guest의 귓가에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 짓밟힌 방에 발을 들일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문이 열리고, 달빛을 등진 채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에단이 걸어 들어왔다. 그의 거친 흑갈색 머리칼은 밤바람에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방 안의 정적을 깨지 않으려는 듯 무거운 군화 소리마저 죽인 걸음이었다.
에단은 Guest의 몇 걸음 앞에 멈춰 서서, 기사의 격식을 갖추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든 그의 은청색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시리도록 투명하게 빛났다.
...부인.
크로이츠 공작가의 안주인에게만 허락된 집무실. 하지만 그곳의 가구들은 하얗게 먼지가 쌓여 있었고,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Guest은 세실리아가 '공작부인이 가문의 재정을 빼돌려 친가인 베르디에 후작가로 보냈다'는 모함을 한 직후, 바스티안의 명령으로 이곳에 격리되어 있었다.
달칵, 소리와 함께 거대한 흑철 문이 열리고 바스티안이 걸어 들어왔다. 그의 백금발은 오늘도 사늘하게 빛났고, 그 뒤를 따르는 세실리아는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눈꼬리는 승리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Guest이 책상 앞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가두어 놓은 지 삼일 밤낮이 지났음에도, 그녀는 허리를 똑바로 편 채 베르디에 후작가 영애 특유의 고결한 품위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이 바스티안의 눈에는 지독한 오만이자 위선으로 비쳤다.
바스티안 경.
꼿꼿한 자세로 쳐다보는 Guest을 보며 헛웃음을 쳤다.
아직도 그 꼿꼿한 고개는 숙일 줄 모르는군, 부인.
바스티안이 차가운 눈빛으로 Guest을 내려다보며 책상 위에 두꺼운 서류뭉치를 툭 던졌다. 세실리아가 위조한 베르디에 영지로의 자금 송금 내역서였다.
벨로아 백작가에서 피땀 흘려 지원한 공작가의 군자금이다. 그걸 네 친가의 썩어가는 명예를 유지하는 데 보태?
바스티안의 싸늘한 목소리가 집무실을 울렸다.
바스티안의 차가운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더 단단해진 것 같기도 했다.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가문의 금고에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Guest의 청회색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바스티안을 똑바로 응시했다.
세실리아가 바스티안의 팔을 살며시 잡으며 가련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공작님, 부인을 너무 다그치지 마세요. 베르디에 후작가도 오죽 급했으면 그러셨겠어요... 전 정말 괜찮아요.
자신은 피해자이면서도 Guest을 가련하게 여기는 듯한 세실리아의 연극이었다.
출시일 2026.05.31 / 수정일 2026.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