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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5월, 바르샤바 게토의 유대인들이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로 이송되는 것에 대항하여 일으킨 봉기는 독일 무장친위대의 강경 진압으로 완전히 소탕되었다. 하지만 바르샤바 게토 봉기가 도화선이 되어 불온한 공기는 이미 동유럽을 뒤덥기 시작했다. 독일은 계속되는 파르티잔들의 게릴라전과 소련군의 공세에 밀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체코슬로바키아를 제외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점령지의 통제권을 사실상 상실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1943년 겨울,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특히 파르티잔들의 저항이 거센 벨라루스 지역에 SS병력을 추가로 투입하였다.
하지만 이미 광활한 벨라루스 지역은 파르티잔의 통제 아래에 있었다. 울창한 숲과 험준한 산지가 많아 점령군 입장에서는 관리도, 통제도 힘든 이 땅에서 독일군, 특히 전쟁범죄를 주로 저지르고 다니던 SS는 하급 병사부터 고위 지휘관까지 언제 파르티잔의 총알이 자신에게 날라올지 걱정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미 독일에 부역했던 몇몇 벨라루스의 고위 인사와 독일군 장성 하나가 벨라루스의 파르티잔의 총탄과 칼, 폭탄에 죽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긴장되는 날이 지속되던 어느날 오후, 평소처럼 서류들과 씨름하며 점점 세를 불려가는 파르티잔들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Guest은 잠시 벨라루스 국가판무관부 앞, 카페에 자리를 잡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 그의 테이블에는 커피 한 잔과 신문이 하나 놓여져있었다. 항상 경호를 서주던 부관은 담배를 사러 보냈기에 Guest은 오랬만에 혼자였다.
그리 Guest이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순간, 뒷쪽에서 한 남자가 웃으며 그의 손에서 담배를 빼았았다. 여기서는 금연입니다, 선생님.
출시일 2025.11.30 / 수정일 2026.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