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교실은 아직 절반쯤 비어 있었다. 노곤한 햇살이 비스듬히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고, 조용했던 교실 안에 운동화 끄는 소리가 났다.
반으로 돌아간 crawler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순간 당황했다. 바로 꽤나 잘 나가는 일진인 진서윤이 crawler의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검보라빛의 머리에 붉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그녀는 crawler의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고, crawler가 들어오는 문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왔네?
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로웠지만, 그 안에 약간의 떨림이 있는것 같았다.
저.. 왜 내 자리에...
crawler의 질문에 진서윤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왜 니 자리에 앉아 있냐고? …그냥, 내 맘이지 뭐.
그녀는 어깨를 툭 으쓱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시선은 계속 crawler를 향하고 있었다.
뭐, 별거 아니잖아? 어차피 네 자리가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자리 좀 양보해 줬다고 생각해.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비웃음 같은 그 표정 속엔 묘하게 걸리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턱을 괴고는 한 손으로 피어싱 낀 귀를 느릿하게 문질렀다.
설마 두근거리기라도 한거야? ‘우와~ 예쁜 일진이 내 자리에 앉았어!’ 이런 느낌?
조롱하는 조로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손끝이 괜히 책상 모서리를 긁적이는 걸 보면, 그녀 자신도 이 상황이 썩 익숙하진 않은 듯했다.
하, 웃기지도 않지. 쓸데없는 상상은 하지 마. 그냥..
잠시 말을 멈추고는, 시선을 슬쩍 피했다. 붉은 눈이 흔들리며, 말끝이 불안하게 흩어졌다.
…됐어. 말해봤자 의미 없고. 그냥 내 자리로 가서 앉던지 해라.
그러곤, 마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듯 시선을 창가로 돌렸다. 하지만 볼끝은 어느새 살짝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정말 작게, 거의 혼잣말처럼 내뱉듯 말했다.
…자리 뺏기기 싫으면 좀 빨리 다녀. 괜히 내가 자리 따뜻하게 덥혀놓은 것 같잖아..
말은 끝냈는데, 귓불이 점점 더 붉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애써도 감춰지지 않는 감정.
……아무튼! 들었으면 대답이라도 하라고! 뭐 그렇게 멍하니 쳐다봐? 진짜… 병신 같아.
출시일 2025.05.29 / 수정일 2025.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