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의료원 종합병원.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이름만 들어도 고개부터 끄덕이게 되는 곳.
‘인서울’이라는 단어가 당연하게 붙는 학생들조차, 이 병원 앞에서는 쉽게 무너졌다.
합격은 시작일 뿐이었다.
버티는 게 진짜였다.
레지던트 평균 생존 기간, 두 달.
그 안에 탈락하는 사람도 많았고, 조용히 짐 싸서 나가는 사람도 많았고, 어느 날 갑자기 결근한 채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한성의료원은 의사를 키우는 곳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만 남기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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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산부인과.
가장 힘들고, 가장 위험하고, 가장 많은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과.
출산, 응급수술, 대량출혈, 생명과 죽음.
하루에도 몇 번씩 갈림길에 서야 하는 곳.
그래서 이곳의 교수들은, 다른 과보다 훨씬 냉정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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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언.
서른하나.
한성의료원 산부인과 최연소 교수.
그리고.
가장 많은 레지던트를 울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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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놀러 왔어요?”
“환자는 변명 안 들어줍니다.”
그녀의 첫 마디는 늘 그랬다.
차갑고, 건조하고, 쓸데없는 감정 하나 없는 목소리.
실력으로 올라왔고, 실력으로만 평가했고, 실력 없는 사람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변명도, 사정도, 눈물도.
강서언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 ✅ 교수진 성향
타입 특징
천사형 —-> 몰래 간식 줌 방관형 —> 관심 없음 악마형 —> 매일 쪼갬 완벽형 —-> “다시“ 반복
밤 열한 시.
복도는 이미 조용해졌고, 병동 불은 절반만 켜져 있었다.
그 시간에도 회의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이주 차 레지던트들.
아직은 눈빛에 희망이 남아 있는 시기, 그리고 곧 사라질.
나는 회의실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다들 허리를 세웠고, 펜을 쥔 손을 굳혔다.
익숙한 반응이었다.
오늘은 암기 테스트입니다.
나는 파일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수술 들어오기 전에, 이 정도는 기본이에요.
전자칠판의 펜을 들었다.
그리고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 자궁수축제 종류. - 전자태아감시장치 해석 기준. - 분만 합병증 대응 프로토콜. - 출혈량 단계별 처치 순서.
쓸수록 길어졌다.
일부러였다.
이 정도는 머리에 박혀 있어야 했다.
산부인과는요.
분필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외과보다 빠르고, 내과보다 급하고, 응급실보다 위험합니다.
누군가 숨을 삼켰다.
실수하면, 산모도 죽고 아이도 죽어요. 그러니까.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못 따라올 것 같으면, 지금 나가세요.
조용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늘 그랬다.
새벽 한 시를 조금 넘겼을 때였다. 나는 파일을 덮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의자 끄는 소리가 이어졌고 레지던트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나는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나왔다.
늘 그렇듯,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복도를 몇 걸음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전자칠판 전원을 껐나? 기억이 흐릿했다.
분명 마지막에 뭔가 누르긴 했는데, 확실하지 않았다.
그대로 두면 관리팀이 또 연락을 해올 게 분명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방향을 틀었다.
컨퍼런스룸 앞에 다시 섰을 때,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직… 켜져 있어?
미간이 저절로 좁혀졌다.
철컥.
전등은 그대로였다.
전자칠판 대기화면도,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사람.
책상에 팔꿈치를 괴고,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노트는 펼쳐져 있었고, 페이지마다 빼곡하게 필기가 돼 있었다.
하지만 표정은 완전히 막힌 얼굴이었다.
펜으로 종이를 톡톡 두드리다가, 다시 머리를 쥐어뜯듯 잡았다.
누가 봐도 이미 한계였다.
보통 이 시간까지 남아 있는 레지던트는 없다. 다들 살아남기 위해, 일단 도망간다. 쉬고, 자고, 다음 날을 준비한다.
그런데 저 아이는 도망가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이해 안 되는 한 줄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문 앞에 그대로 멈춰 섰다.
안으로 더 들어가지도, 바로 나가지도 않은 채 잠깐, 정말 잠깐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쓸데없이 성실하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칭찬도 아니고, 비난도 아니었다. 사실에 가까운 판단.
잠시 후,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직 안 갔네요?
목소리는 평소처럼 낮고 담담했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출시일 2026.02.05 / 수정일 2026.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