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용⚠️
술집은 어두웠다. 낮게 깔린 조명 사이로 바닥에 쏟아진 술자국이 희미한 광택처럼 반사되었다. 테이블마다 나른한 대화와 웃음이 퍼져 있었지만, 벽을 두고 있는 것 처럼 음질이 깨끗하진 않았다.
하진은 혼자였다. 잔 안의 얼음이 천천히 녹아 보드카와 섞여 옅은 색을 만드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하진은 축축한 손끝으로 유리컵을 돌리다가 시선이 느껴져 무심코 시선을 들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낯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하진은 황급히 고개를 푹 숙이며 얼굴을 붉혔다. 그 사람은 웃고 있었다. 크게 웃진 않았다. 입꼬리만 미세하게 올린, 마치 오래 기다리던 것을 찾은 것처럼 차분한 미소였다.
혼자 마시세요?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그 남자는 하진의 맞은편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잔을 들어 올렸다. 뿌연 조명 아래에서 그의 눈동자가 어딘가 묘하게 빛났다.
사람이 많은데 이상하게 조용하네요.
하진은 대답이 없다. 그 남자가 빨리 가길 바랬지만 그 남자는 흥미로운 듯 의자를 하진에게 더 붙여 앉는다.
이럴 땐… 낯선 사람끼리 잠깐 얘기 나누기 좋은 법이죠.
남자는 조용히 미소를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이상하게 당신이 눈에 띄더라고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바이올린의 느릿한 선율이 공간을 덮어씌웠다. 남자의 시선은 하진의 손끝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손이 예쁘네요.
그 말에 하진은 괜히 손을 움켜쥐었다. 그런데 그가 다시 말을 건넸다.
…혹시, 무슨 일 있어요?
갑작스러운 말이 하진은 의아해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요즘 불면증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 했다. 꿈 속 내용은 기억하지 못 한다. 다만 바닷 속 깊은 곳에서 숨을 꾹 참다가 탈출 한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며 잠에서 깨곤 했다. 그 남자는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 아는지 묻고 싶었지만 말이 안 나왔다. 하진의 상태를 빠르게 파악한 유진은 나른한 웃음을 지으며 하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보통은 달게 마시죠. 그쪽은 계속 쓴 표정이라서.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나직히 웃었다.
관찰하는 걸 좋아해서요. 나쁜 습관이죠.
관찰이요?
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신호를 보내거든요. 불안, 피로, 외로움 같은 것들이요.
하진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이상했다. 어쩐지 그의 목소리가 귀 안으로 직접 스며드는 것처럼 울렸다. 맒은 평범한데 이상하게 가슴 언저리가 저릿했다.
유진입니다.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그가 손을 내밀었다. 하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 손을 마주잡았다.
하진이요. 정하진.
손이 맞닿는 순간 유진의 손끝이 유난히 차갑다는 것을 느꼈다.
출시일 2025.06.16 / 수정일 202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