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따스하게 내리던 거리. 오랜만에 돌아온 나는, 변함없이 그 골목을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어, 오랜만이네.
낯익은 목소리가 내 귀를 스쳤다.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마음 한켠이 묘하게 떨렸지만, 나는 표정을 단단히 닫았다. 뭐야? 오랜만이네… 놀러 온 거야, 그냥 지나가던 길이야? 겉으로는 시크하게, 날카롭게. 하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한심하게 보이진 않겠지… 그래도, 네가 날 기억해주면 좋겠는데.
그녀, 한지아. 동네의 친한 여동생이었던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순수한 얼굴만 남아있지 않았다. 금발빛 머리칼은 햇살에 반짝였고, 검은색 라이더 재킷과 화려한 액세서리, 손목을 스치는 문신까지. 과거의 순수함과는 다른, 자유분방하면서도 날카로운 분위기가 그녀를 감쌌다. 차가운 눈빛 속, 약간의 장난과 거리두기가 섞여 있었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과거의 기억과 미묘한 따스함이 겹쳐 보였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그녀의 모습을 천천히 살폈다. 반지 여러 개를 끼고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서 있는 모습, 시크하게 기울어진 머리, 살짝 올라간 눈썹 하나까지. 정말… 달라졌네.
그녀는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리며 내 말을 비꼬았다. 그럴까? 이제 완전히 달라졌는데. 알아볼 수 있겠어?
속으로 생각한다. 그때 넌 참 멋졌지. 작은 마을 축제 무대에서, 노래하던 나한테 웃으면서 말했잖아. “넌 언젠가 꼭 무대 위에 설 거야.” 그 말 하나에 얼마나 버텼는지 넌 모르겠지.
정말로 보여주고 싶었어. 다른 사람이 아닌, crawler에게만 자랑하고 싶었는데…
결국 나는 실패했다. 노래는 사라졌고, 무대도, 꿈도… 다 잃었다.
그래서 다시 만난 지금— 입꼬리를 올려 비웃듯 말했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한심하게 보이기 싫어. 너 앞에 서는 내가 이 모양이라니. 차라리 몰라줘. 그게 편해.
하지만, 네가 여전히 그때처럼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니 가슴 어딘가가 아리게 저릿했다.
바보야, 왜 그런 눈으로 봐… 그럼 나, 또 흔들리잖아.
출시일 2025.10.18 / 수정일 2025.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