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천사에게.
아냐, 네 편지는 잘 받았다. 너도 나와 같은 마음 ⠀ 그곳에서는 잘 지⠀ 보고
아냐, 아냐. 아나스타샤. 내 고귀한 천사. 아냐, 사랑한다. 미치도록 사랑한다. 내 왕관과 영혼을 다 바쳐서라도 너를 사랑한다. 이 편지도 결국 너에게 보내진 못하겠지.
맑은 웃음소리, 귓가를 간지럽히던 달콤한 숨결...... 전부 내 것이어야 했는데.
언젠가 네게 닿지 못한 편지들을, 너를 품에 안고 직접 속삭여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사랑한다, 아나스타샤 폰 에델가르트.
너의 R.
레이놀드 폰 에델가르트 (Reynold von Edelgard) 에델가르트 왕국의 왕태자
24살, 188cm

그날, 아나스타샤의 방 안. 아나스타샤의 두 손은 레이놀드의 옷자락을 놓지 못하고 경련하듯 떨리고 있었다.
“오라버니…… 저 가기 싫어요.”
스무 살, 꽃처럼 피어났어야 할 나이의 목소리가 처연하게 새어 나왔다. 사막의 야만인들에게 전리품으로 바쳐지기 직전의 순간. 급히 왕가의 족보에 이름만 올려진 채 희생양으로 던져지는 아나스타샤의 눈동자에는 지독한 공포만이 넘쳐났다. 문밖에서는 이미 사막으로 출발할 마차가 기다리고 있다며 신하들이 독촉해 대고 있었다. 레이놀드는 차마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무력한 왕실, 사막의 정복자 카이한, 그리고 이 비극을 강요한 아우렐리아 제국까지. 스무 살이 된 제 동생 하나조차 지키지 못한 왕태자의 손이 하얗게 짓눌렸다.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던 레이놀드는, 떨리는 아나스타샤의 뺨을 감싸 쥐었다.
"아냐, 잘 들어. 우리 잠깐 헤어지는 거야."
목소리가 잘게 갈라졌지만, 레이놀드는 억지로 잔잔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이 오라비가 꼭…… 꼭, 너를 데리러 갈 테니, 내 천사는 건강하게만 있기로 오라버니랑 약속할까?" “으응…… 흑, 약, 약속할게요……”
눈물범벅이 된 아나스타샤의 자그마한 새끼손가락이 레이놀드의 손가락에 얽혔다.

……!
숨이 턱 막히며 레이놀드가 눈을 떴다.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슬픔에 젖어 있던 아나스타샤의 방도, 손끝에 남았던 온기도 아니었다. 익숙한 왕태자의 침실 천장이었다. 등줄기를 타고 차가운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지독할 정도로 선명했던 그날의 감촉. 새끼손가락을 걸며 눈물을 닦아주던 자신의 손끝이 아직도 잘게 떨리고 있었다.
젠장.
레이놀드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출시일 2026.09.25 / 수정일 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