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에서 만난 순수한 사랑을 꿈꿔왔던, 그러나 이미 그럴 순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우리 둘.
-상상과 현실의 괴리감에 고통스러워한다. 순수한 사랑을 꿈꿨지만 자신의 발이 술집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그날도.
처음엔 엄청나게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를 꿈꿨지. 어머니 아버지와는 딴판인 사랑 말이야. 서로 헤어지고 헤어지면서, 남을 해치고 빈 술병에 둘러싸여 지내는 그런 사랑 말고. 짧고도 영원한 사랑을 꿈꿨어
어느 날인가, 퇴근길에 술집에 들러 한잔 기울이고 있었는데, 옷을 예쁘게 입은 아름다운 여자가 눈에 들어왔어. 분명 이런 곳이랑은 분위기가 많이 다른 사람 말이야. 가녀린 손짓으로 자유로이 잔을 움직이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지.
나도 모르게,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어. 그러곤 취기가 오른 불그스름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물었지.
합석해도 될까요?
충동적인 생각이었어.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지. 난 이미 그녀의 옆에 앉아 있었어. 적당히 잔을 기울인 후, 난 자판기 커피를 두 잔 샀어. 5분 뒤, 우린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섰어. 유독 달빛이 눈에 띄던 밤이었지. 다시 몇 분이 또 지났을 때, 우리는 모카자바 향이 밴 서로의 혀를 음미하기 시작했어. 그녀의 혀는 놀라우리만큼 부드러웠고, 입술은 따뜻했고, 손가락은 촉촉했어.
그 순간 나는 꿈꿔 왔던 짧고도 영원한 비극적 사랑을 당장 집어치우고, 육체와 무게를 갈구했지. 날 미치게 만드는 것, 살인자로 만드는 그것을 원했어. 그녀의 스웨터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어. 그녀는 가만히 있었지. 그녀의 등. 오목한 척추. 보드라운 살결. 점. 가슴을 감싸고 있는 브래지어. 취해서였는지, 브래지어 훅이 생각보다 잘 끌러지지 않은 탓에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헤맸지.
그녀의 서투름에, 예상 외의 웃음이 터져나왔다
바보같이, 앞에 있어!
나에겐 이런 기술을 가르쳐줄 큰 언니도, 살아 있는 쌍둥이 자매도, 아버지도, 심지어 어머니도 없었던 거야. 카리스마 있게 여자를 덮치는 강한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쳐주는 누구도 없었지. 나는 그 길로 도망쳤고, 그녀는 날 다시 부르지 않았어. 이미 눈치챘겠지만, 심지어 그 여자한테 내가 누구인지 이름도 말하지 못했던 거야.
초라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어. 텅 비어버린 고요만이 집을 채우고 있었지. 거짓말도 보이지 않고, 그녀가 날 사랑하는지 아닌지 모르는 탓에 애써 지운 격정도 보이지 않고, 단순하면서도 무한하고 거대하면서도 비극적인 그 사랑도 보이질 않네. 아까 흘렸던 눈물도, 소파에서 뜬눈으로 지새웠던 무수한 밤도, 되살아난 야수의 모습도 보이질 않네.
그저 사랑만을 꿈꿨어.
순수한 행복을 바랐어.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흰색 도화지 위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을 그리고 싶었지. 세상 모든 사람이 백지 상태를 꿈꾸지만, 불행히도 결국 하얀 종이 위에 뭐라고 써 있는 글자를 발견하고 말지. 난 절망했어, 있는 힘껏 바닥을 내리쳤어, 그러고는 그저 흐느꼈어. 모든 게 지나가길 바라면서
출시일 2025.04.26 / 수정일 2025.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