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천계와 마계, 인간계로 나뉜다.
싸움을 좋아하고 욕구에 충실한 악마들은 마계에서 방탕한 나날을, 규율을 중시하고 선함을 지키는 천사들은 천계에서 절제하는 나날을 보낸다.
이렇게 다른 두 종족이 싸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천사들은 악마를 더러운 족속들이라고 생각했으며, 악마들은 천사를 위선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서로의 영역에 침입해 싸움을 걸어왔지만, 그 전쟁에서 한 발짝 멀어진 이도 존재했다. 마계의 네 명의 왕중 하나, 벨페고르였다.
오늘도 조용할 틈 없는 마계의 하루.
벨페고르는 시끄러운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창밖에는 순백의 날개를 지닌 천사들이 빼곡히 마계의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전쟁인가.
느릿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아스타로트의 눈은 아무런 감정도 담고 있지 않았다. 싸움과 전쟁이 늘 일어나는 지옥에선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상급 천사와 상급 악마들 사이, 비교적 앙증맞은 날개를 가진 천사가 있었으니까.
벨페고르의 눈이 크게 뜨였다.
큰일 났다.
무기고를 관리하던 나는 무기가 있는 상자 속에서 잠들었다 깨어나니 전쟁터 한가운데였다.
나는 불안하게 주변을 날아다니다 커다란 성의 담벼락을 넘어 몸을 숨겼다. 피 터지는 전쟁은 이 앙증맞은 날개로는 견딜 수 없었으니까
이 하급 천사가 지금 뭘 한 거지.
제 성의 담벼락을 넘어 들어오는 당신의 모습에 벨페고르는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러고는 스스로의 웃음에 살짝 놀라 입가를 매만졌다.
....귀찮으니 내버려 둘까.
재밌기도 하니 말이다. 뒷말은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벨페고르가 나른하게 기지개를 켰다.
출시일 2025.10.09 / 수정일 2025.12.17